보고 배우는 인물사/인물여지도

한글창제에 공을 세운 정의공주

윤의사 2021. 4. 4. 12:16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산 63번지에 세종대왕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와 남편 안맹담의 무덤이 있다.

정의공주 묘역, 위의 오른쪽이 정의공주묘이다(출처:진성규교수님)

 

정의공주는 언니 정소공주가 일찍 세상을 떠나 세종대왕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죽산안씨대동보(竹山安氏大同譜)》에 훈민정음 창제에서 정의공주의 공을 기록하고 있다.

 

세종이 우리 말과 한자가 서로 통하지 못함을 딱하게 여겨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변음과 사투리를 다 끝내지 못하여서 여러 왕자들에게 풀게 하였으나 풀지 못하였다.

드디어 공주가 풀어 바쳤다.

이에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상으로 노비 수백을 하사하였다.

 

족보이므로 정의공주에 대해 과장했을 수도 있지만,

훈민정음 창제와 관계가 있으므로 기록이 남겨졌을 것이다.

관찰사를 역임한 안망지의 아들 안맹담과 혼인하여 출가하였으나,

부왕인 세종이 찾아 일을 시키면 모든 정성을 다하였다.

어느날 세종대왕이 발목에 칼심이 박히자 전의들이 당황하였다.

공주는 술찌개미로 붓기를 가라앉힌 뒤 자석을 이용하여 칼심 조각을 빼냈다고 한다.

불심이 깊은 공주는 세종이 승하하자, 부왕과 모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문수사라는 절을 다시 고쳐짓고,

남편 안맹담이 세상을 떠나자 <지장보살원경>을 지었는데,

이 책은 보물 제 966호로 지정되었다.

남편 안맹담은 초서를 잘 쓴 서예가로,

시호는 양효(良孝)공이다.

'어질고 선량하면서 부모를 잘 섬겼다'고 하여 붙여진 시호이다.

 

정의공주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