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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응원합시다!

윤의사 2021. 2. 25. 16:34

미얀마는 한때 버마라고 불리다가 1989년부터 미얀마로 국호가 바뀌었다.

버마는 미얀마 구성 민족 중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버마라는 국호를 사용했었다.

미얀마에 849년에 파간왕국이 처음 들어섰다.

파간왕국의 전성기는 11세기 아노야타 왕(재위:1044-1077) 때이다.

아노야타왕은 소승불교를 발전시키고 몬족을 정벌하였다.

그러나 1254년에 친위쿠테타로 집권한 나라티하파티는 왕권 강화를 꾀하며

원나라와 맞서다가 기병전술에 대패하였다.

나라티하파티는 왕자 티하투에게 살해당하면서 파간왕조는 사실상 멸망하였다.

이후 북부지방은 원나라의 지배하에, 남부의 몬족은 독자 왕국을,

중북부는 샨족 저항군이 원나라를 몰아내고 잉와 왕조를 세우면서 250년간 미얀마는 남북으로 분열되었다.

1444년과 1447년 두 차례에 걸쳐 명나라의 침입으로 잉와왕국은 쇠퇴하다가

1527년에 250년 통치를 끝으로 멸망하였다.

불교의 성행으로 사원이 400만 개를 건립하였다.(현재 바간 지방에는 2500개 정도 남아 있다.)

이 와중에 버마족이 독립하여 1531년 따빈슈웨티는 퉁구왕국을 건국하였다.

따빈슈웨티는 영토를 확장하였으나 암살당해 퉁구왕국이 위기를 맞았다.

이때 이복형 버인나웅에 의해 재통일이 이루어져 1752년까지 지속되다가

미얀마 저항세력인 알라웅파야에 의해 멸망하고 1759년에 미얀마를 통일하였다.

퉁구왕국은 태국의 수코타이와 아유타야, 그리고 치앙마이를 점령하여,

이곳에서 칠기 장인들을 포로로 데려오면서 오늘날 미얀마가 칠기예술이 발달하는 기초를 이루었다.

알라웅파야왕조 때 태국을 침략하여 태국이 수도를 방콕으로 천도할 정도로 강력했으나,

인도를 지배한 영국과 아삼지방을 둘러씬 두 차례의 전쟁(1824∼26, 1852)으로 세력이 축소되었으며,

3차 영국과의 전쟁 끝에 1885년 식민지가 되었다.

미얀마를 인도의 일개 주로 취급하던 영국이 불교를 인정하지 않자

1931년 농민봉기가 일어나 1937년 미얀마를 인도에서 분리시켰다.

2차 대전 중에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했으나 1948년에 독립할 때까지 영국의 식민지였다.

아웅산과 우쏘의 정치적 갈등으로 혼란에 빠졌던 미얀마는

우쑈가 아웅산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으면서

정국을 안정시키고자 국영 공장 건설, 외국인 기업의 국영화, 토지 개혁 등 개혁을 추진했으나,

사회 불안, 해외 원조의 감소, 농업 생산의 감소와 정치불안으로 개혁이 실패하였다.
1962년 3월 2일, 네윈(Ne Win)을 중심으로 하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미얀마사회주의공화국이 성립되어, 한때는 석유와 쌀을 수출하여 대한민국보다 오히려 부국이었다.

그리하여 197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던 '박스컵' 축구대회에서

대한민국과 결승에서 대결하던 국가였다.

하지만 국정 혼란이 계속되어 최빈국으이 되었다가, 아웅산 수지여사의 역할로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하지만 아웅산 수지 뒤에서 군부가 로힝야 난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렀다.

하지만 2016년에 이어 지난 해에도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NLD는 총선에서 83%를 차지하며 승리하였다.

이에 부정선거 의혹을 내걸며 군부가 쿠테타를 일으켰다. 아웅산 수지의 힘을 빼고자 가택연금하였다.

하지만 미얀마의 민주화는 지지받아야 한다.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는 미얀마를 응원합시다.

쿠테타군과 싸우는 미얀마시민(출처:알탄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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