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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의 술정치

윤의사 2021. 1. 10. 15:47

세조 9년(1463) 9월, 영의정에 신숙주, 우의정에 구치관이 임명되었다.

한명회와 함께 두 사람은 세조가 가장 아끼는 공신이다.

"한명회는 나의 장자방(張子房-중국 한나라의 책략가)이고, 신숙주는 나의 위징(魏徵-당나라의 명신)이며, 구치관은 나의 만리장성이라고 할 정도였다.

세조는 신숙주와 구치관을 내전으로 불렀다.

술을 좋아하며 장난이 심했던 세조는 술자리를 마련하면서

"내가 물어볼 것이 있는데, 경()들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벌주(罰酒)를 내릴 것이오."

라고 한 다음 '신정승'하고 불렀다.

이에 신숙주가 '예'라고 대답하자

"나는 신()정승을 불렀는데, 그대가 잘못 대답했구려."

하며 신숙주에게 큰 잔으로 벌주를 내렸다.

 "구정승"했을 때는 신숙주와 구치관 모두 누가 대답을 할 지 몰라 대답을 하지 못하니

두 사람 모두 벌주를 마셔야만 했다.  

세조 자신은 얼마를 마셨는지 알 수 없지만, 신숙주와 구치관은

"종일 벌주를 마시다가 몹시 취해서 파했다."

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호주가(好酒家)인 세조 연간에 '술자리'로 검색하면

많이 즐긴 태종이 167건인데, 세조는 467건이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세조는 술자리를 일종의 통치행위로 삼은 듯 하다.

사람들이 술을 좋아하면 여자까지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세조는 호주가이지만 호색한(好色漢)은 아니었다.

세조 8년(1462) 12월 4일 술자리에서 세자에게 이르기를 

 

 

"금은주옥(金銀珠玉)으로 폐첩(嬖妾)을 화려하게 꾸며서 사랑과 즐거움을 함부로 하고

혹은 이와 더불어 술에 참혹하여 민생(民生)의 아픔과 괴로움을 알지 못하여 패망(敗亡)에 이르게 되니,

이는 곧 한평생을 아무의미없이 사는 것으로 어찌 족히 도()라 하겠는가?

내가 본래 색()을 좋아하지 아니하여 술을 마시고 싶으면 너와 여러 장상(將相) 등과 더불어 술을 마시고

절대로 궁첩(宮妾)과 더불어 술을 마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네가 보는 바이다.

또 내가 소용(昭容) 1()과 소녀(少女) 1인이 있을 뿐이며 죄가 있으면 혹 이를 가두기도 하니,

누가 감히 내게 말하겠느냐? 또 상벌(賞罰)은 조금도 해이할 수 없는 것으로 상벌이 조금 해이하면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 모름지기 상()이 그 공에 적당하고 벌()이 그 죄에 적당하여야 가()하니,

너는 마땅히 마음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세조의 바램과 달리 세자는 후에 예종으로 즉위하여 친정을 하기 전 1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또한 세조는 정희왕후 윤씨와 후궁 근빈 박씨, 숙원 신씨를 두었다.

영화 '관상'포스터, 배우 이정재가 세조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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