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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 전투

윤의사 2021. 1. 11. 15:44

1950년 11월부터 진행된 '장진호 전투'는 미국이 참전한 세계 전쟁사의 3대 전투 중 하나이다.

'장진호 전투'는  6.25전쟁 중 당시 미 제10군단 소속의 제1해병사단 1만 3천여 명이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저수지인  '장진호'에서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벌였던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미해병 1사단은 중공군 제9병단 12만 명에게 포위되었다가,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하였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 2만 5천 명을 사살하였으나, 미 해병 1사단은 전투 및 비전투 사망이 7백여 명과

실종 2백여 명, 부상자 1만여 명뿐이었다.

요즈음 영하 17도의 기온이 강추위라고 하지만,

당시 장진호는 낮에는 영하20도, 밤에는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졌으며,

성인 남성의 무릎까지 빠지는 60센티미터 이상의 눈이 쌓여 있었다.

그러므로 매서운 추위로 총은 얼어붙어 사격이 불가능할 정도이며,

미군의 절반 이상은 동상에 걸린 상태로 중공군과 싸워야만 했다.

하지만 이 전투로 중공군은 꼼짝 못하게 한곳에 머무르게 하면서

북한 동북부의 철수작전은 순조롭게 이루어졌으며 반격의 시간을 얻을 수가 있었다.

흥남철수작전’은 정원 60명인 메러디스 빅토리아호에 배에 있던 무기를 버리고

한국군과 유엔군 12만 명과 피란민 10만 명을 안전하게 남쪽으로 철수시켜 소중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흥남철수 장면

미국에서는 장진호 전투의 영웅들을 'The Chosin Few(‘장진호 전투에서 살아남은 몇 안되는 전우라는 뜻)'로

부르며 기리고 있다.

여기서 ‘Chosin’은 '장진(長津)’의 일본식 발음인 ‘Chosin(ちょうしん)’에서 나온 것이다.

지난 박근혜 정부가 한 일 중 가장 고마운 것은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예산 삭감에도

미국 버지니아주 콴타코시의 해병대 박물관에 기념비를 세운 것이다.

버지니아주 콴타코시에 있는 해병대 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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