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영남길

왜 판교라고 했을까?

윤의사 2021. 2. 4. 14:26

조선시대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판교라고 했다가,

1914년 너분배를 합쳐 판교리로 바뀌었다.

1973년 성남시 판교동이 되었다.

판교동(板橋洞)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청계산에서 시작된 운중천에

널판지로 다리를 놓고 다녀서 '널다리'라고 부르다가 '너더리'로 바뀌었다.

너더리를 한자로 표기하면 '판교(板橋)'라 쓰인다.

1530년에 만들어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광주군 역원군에 판교원이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조선 초기부터 불리운 것으로 추정된다.

판교원은 한양에서 영남길로 가던 관리들이

이곳에서 말이나 숙박, 식사를 하던 곳이다.

지금은 판교가 낙생을 포함하지만,

일제식민지시대에는 낙생면 판교리였다.

'낙생(樂生)'의 지명의 유래는 두 가지가 전한다.

 

하나는 오늘날 백현동에 낙성시장이 있었는데,

'낙성(落城)'이 '낙생'으로 변했다는 설과

둘째는 병자호란 때 충주병사 정세규가 남한산성을 구원하러오다가

판교에서 패배하였기에 인조가 항복하여 '성이 함락되었다'는 뜻의 '낙성(落城)이

낙생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 광주목에

'이곡이 고향가는 길에 1349년 4월 낙생에 이르러...'

라는 글로 미루어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지명으로 추정된다.

 

오늘날에는 판교신도시와 판교테크노벨리로 새롭게 주목받는 도시가 되었다.

정류장의 이름이 '너더리'이다.
운중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옛날에는 널판지로 만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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