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우리나라의 볼거리

동학혁명전적지

윤의사 2021. 1. 8. 16:16

우리 조상들은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에게 시달렸다.

정치를 담당한 관리들은 주변 강대국의 움직임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개인의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웠다.

이 때문에 하층민인 백성들은 고통의 나날을 보냈으며,

그 고통을 벗어나고자 혁명을 꾀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갑오동학농민혁명이다.

1894년 갑오년에 일어난 동학혁명은 지금의 정읍시 고부면, 영원면, 이평면,

부안군 백산면, 고창군 부안면에서처음 일어났다.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농민들은 수탈하였던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반대하여

녹두장군 전봉준의 지도로 혁명을 일으킨 농민군은 고부군청을 습격하였다.

농민들의 원혼이 잠겨있는 고부군청 자리에는 지금은 고부초등학교가 들어서 있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신을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듯 하였다.

고부관아터 표지
고부관아터의 고부초등학교(사진출처:고부초등학교)

 

 

고부를 지나면 백산의 넓은 들판을 만난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을 정도의 넓은 들판이 펼쳐있는 곳이다. 넓은 들판의 한가운데 낮은 언덕이 있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형편없는 언덕, 그러나 드넓은 만경평야에서는 이만한 높이의 산도 찾기가 힘들다. 그러나 높이 47m의 백산에 올라서면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이곳에서 녹두장군 전봉준은 남쪽에서 올라오는 손화중부대와 만나 관군과 싸울 준비를 하였다.

이곳에서 동학군은 흰옷을 입고 죽창을 들고 진을 쳤다.

그래서 '서면 백산이요, 앉으면 죽산이라'라는 말이 생겨났다.

동학군이 모두 서면 흰옷 때문에 산이 하얗게 보이고, 앉으면 대나무창이 머리 위로 덮여 대나무산, 곧 죽산(竹山)을

이룬 듯이 보였기 때문이라 나온 말이라 한다.

백산창의비, 동학군의 죽창을 본다 대나무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백산을 떠나 동학농민혁명의 원인을 제공한 만석보터로 갔다.

모악산에서 시작한 태인천과 내장산에서 시작한 정읍천이 여기 만석보터에서 만나 동진강을 이루면서 제법 큰 강이 되어 호남평야의 젖줄 구실을 하는 강이다. 이곳은 호남평야의 일부분이지만, 흔히 배들평라고 한다.

배들평야가 있는 이곳의 지명은 '이평(梨坪)'이다. 드넓은 평야에 웬 배나무 밭일까?

배들은 만경강을 따라 배가 여기까지 들어왔다고 하여 '배들평야'라고 했다고 한다.

혹시나 조세 운반선이 이곳까지 온 것은 아닐까?

아니면 일본인들이 쌀을 수탈하기 위해 배가 이곳까지 온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된다.

만석보가 있던 배들평야의 강둑

 

이곳에는 1973년에 동빈 김상기 선생이 중심이 된 동학혁명기념사업회에서 세운 '만석보허비'가 있어 동학농민혁명의 원인을 제공하였던 장소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만석보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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