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인물여지도

유길준

윤의사 2020. 5. 9. 11:26

일제 강점기 애국 계몽 운동가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유학생으로 서양 문물을 소개하는 <서유견문>을 써서 개화의 필요성을 널리 알렸다.여러 제도를 새롭게 바꾸는 개혁 운동, 국민을 계몽시키는 교육 사업 등을 통해

나라를 근대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대한문전>, <노동야학독본>, <세계대세편>, <평화광복책>, <이태리독립전사> 등의 책을 남겼다.

자는 성무, 호는 구당이다.

    

유길준은 젊은 시절 박규수의 제자가 되어 실학을 배우며,

박영효, 김옥균같은 젊은 개화파 지식인들과 사귀었다.

그리고 신사유람단에 참가하여 일본에 갔다가 게이오 대학에 입학하였고,

이듬해 돌아와 외교와 관련된 일을 맡아보았다.

1883년에는 주미전권대사인 민영익을 따라 미국에 갔다가 워싱턴과 보스턴 등지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유럽도 둘러보았다.

유길준은 빠르게 변해 가는 세계 정세를 누구보다도 빨리 보고 겪으며 조선의 근대화 필요성을 깨달았다.

 

<서유견문>을 써서 개화의 필요성을 알리다

유길준은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서둘러 귀국하였다.

그러나 3일 만에 정변은 실패로 끝나고, 김옥균 등과 가까웠던 유길준도 집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되었다.

이때 유길준은 세계를 돌며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최초의 서양 기행문인 <서유견문을 썼는데,

개화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던 중 한 미국인이 조선에 전기 시설을 설치하여 부당하게 이익을 얻으려 하자 이를 막았다.

유길준은 우리나라의 이권을 지킨 공을 인정받아 갇혀 지내는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애국 계몽 운동을 펴다

유길준은 김홍집을 도와 개혁 정책을 펴다가 아관파천이 일어나자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고종이 물러난 뒤 귀국하여 흥사단의 부단장으로 활동하였다.

 또 계산학교와 노동야학회 등을 세워 인재를 키우고 국민을 계몽시키는 한편,

국민경제회, 호남철도회사, 한성직물주식회사 등을 만들어 민족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이와 함께 유길준은 한일합방을 주장하는 일진회에 정면으로 맞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 나라를 빼앗기자, 유길준은 일제에 협력하기를 거부하며 그들이 내린 남작 지위도 받지 않았다.

 

최초의 우리말 문법책을 펴내다

유길준은 국어와 한문을 섞어 쓰는 국한문 혼용체를 주장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한편,

국어 문법 연구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가 바로 <대한문전>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서구의 문법학을 국어에 적용해 만든 우리말 문법책이다.

유길준은 일본 유학 시절에 국어 문법에 대해 처음 글을 썼는데,

그 뒤 8번이나 원고를 고챠 쓰고 나서 1909년에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대한문전>은 서문, 언어편, 문장편, 부론으로 구성되어 있고,

학교의 문법 교재로도 쓰여져 초기 국어 문법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보빙사로 갔을 때

<서유견문>

유길준 친필 글씨


검단산에 잠든 유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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