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우리나라의 볼거리

운현궁

윤의사 2020. 3. 4. 19:19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흥선대원군이 살던 집이 바로 운현궁이다.

현재 운현궁은 넓지 않지만 흥선대원군의 집이었을 때에는 왕의 아버지로

그 집이 어마어마하게 컸다고 한다.

운현이란 이 집 앞에 천문과 날씨를 관측하는 서운관이 있었으며,

그 옆으로 얕으막한 언덕이 있어 운현(雲峴)’이라 부르게 되었다.

문을 들어서면 맨 처음 만나는 곳이 노안당(老安堂)이다.

논어(論語)공치장편(公治長篇)에 나오는

'老者 安之(노자 안지)'에서 따온 것으로 노인이 편안한 집이다.

고종을 임금으로 앉혔을 때부터 약 10년 간 흥선대원군의 마음이 아닐까?

이곳은 운현궁의 사랑채이다. 고종원년(1864) 9월에 만들어졌다.

날렵하게 올라간 처마선이 여자들이 입은 한복에 비교될 만큼 아름답다.

하지만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처럼 흥선대원군도 조선과 백성들을 위해 만든

각종 정책을 추진하다가 결국 권력을 아들인 고종에게 넘기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된다.

  


안당과 현판

 

노안당에서 중문을 통해 들어가면 안채인 노락당(老樂堂)이 나온다.

노락당은 어려울 때 자신에게 시집와 고생을 한 부대부인 민씨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다.

노락당은 노안당과 같이 고종원년(1864) 9월에 만들어졌다.

노락당의 위세는 처마와 기둥 사이에 있는 익공에서 느낄 수가 있다.

흡사 용처럼 생긴 장식으로 건물은 화려하면서도 힘이 느껴진다.

10년 동안 권력을 행사한 흥선대원군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처마는 이중으로 만들어진 겹처마 양식으로 궁궐 이외의 일반 백성들의 집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이다.

노락당 지붕을 마감하는 막새에는 다산과 다복을 상징하는 박쥐가 그려져 있다.

아마도 왕손이 귀했던 조선왕실에서 많은 자손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고종과 명성황후의 혼인(왕가의 혼인은 가례라고 해요)이 이루어졌다.

감히 왕가의 혼인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은 흥선대원군의 힘을 추측하게 한다.

               


노락당과 현판

 

노락당에서 솟을지붕으로 우뚝 솟은 통로를 지나면 이로당(二老堂)이다.

복도가 있는 통로는 아래로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 문을 만들었다. 한 폭의 그림같.

    


이로당과 현판


노락당과 이로당을 잇는 복도

 

고종6(1869)에 증축한 이로당은 어지러운 세상과 떨어지고픈 부대부인 민씨가

이곳에서 생활했으니 노락당과 함께 안채라고 해야겠다.

이로당은 ㅁ자 모양으로 바깥에서 접근하기가 힘든 여성들만의 공간이라고 할까?

이곳의 지붕 막새에 박쥐가 그려져 있다.

역시 자손이 귀한 조선시대에 자손의 번성과 복을 바라는 마음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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