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박물관은 살아있다

옛날에도 온실이 있었나요?

윤의사 2020. 2. 26. 19:12

오늘날은 겨울철에도 상추에 삼겹살을 싸서 먹을 수가 있다. 겨울철에 장미를 사서 사랑하는 애인에게도 줄 수가 있다. 계절과 관계없이 사람들은 꽃과 채소를 얻을 수가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겨울에 꽃을 임금이나 왕비에게 바쳤다면 사실일까? 물론 사실이다.

  계절에 상관없이 채소나 꽃을 얻기 위해서는 온실이 필요하다. 온실을 지으려면 뼈대를 이룰 수 있는 대나무나 철로 된 파이프, 그리고 비닐이 필요할 것이다. 옛날에도 대나무는 구할 수 있었겠지만 비닐은 석유를 이용하고 나서 얻어진 것이 아닌가?

  조선시대 세종에서 세조대까지 활약한 전순의가 쓴 『산가요록』에 그 비밀이 나와 있다. 전순의는 온실을 만드는 요령을

 

  ‘삼면축폐’, 즉 삼면을 벽으로 쌓아 막고

  ‘남면개작전창’, 즉 남쪽으로 창을 내고

  ‘도지유지’, 즉 창문에는 기름종이를 바른다.

  ‘조돌물영연생’, 즉 바닥은 구들을 만든다.


낮에는 창을 통해 보온을 하고, 춥거나 밤에는 난방을 통해 보온을 하려는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였다고 하겠다.

  전순의가 『산가요록』을 쓴 것이 대략 1450년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그런데 서양에서 온실이 등장한 것이 1600년대이므로, 우리나라의 온실이 대략 150년이 앞섰다고 할 수가 있다.

  『성종실록』에는 장원서에서 영산홍을 성종에게 바치자, 성종이 자연의 이치를 거슬린 것이라고 하여 올리지 못하도록 하교하였다거나, 동지와 입춘에 꽃을 올리니 대비전에만 올리라고 하고 있다.

  『연산군 일기』에도 겨울철에 흙집에서 시금치를 길렀다는 내용이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조선시대 궁중의 정원·화초·과실 등의 관리를 맡아보던 관청인 장원서에서 온실을 만들어 꽃이나 채소를 키워서 진상했을 것으로 『산가요록』을 통해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흙으로 만든 벽은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기능이 있다. 또한 기름 종이는 비닐보다도 내부 온도를 잘 유지시켜주면서 외부의 바람을 막아주는 한편 비나 눈이 올 경우 이를 잘 막아준다. 그리고 한지의 단단함은 웬만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견고함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온실을 만들었던 까닭은 겨울철에 임금이 드시는 수랏상에 올릴 채소를 키우면서, 약재로 쓰일 재료를 얻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온실이 서양보다 앞서서 만들어진 것은 조선시대 농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농정책(重農政策)’의 영향으로 과학적인 영농 기술의 발달을 보여주고 있다.


농업박물관에 있는 온실 모형


'보고 배우는 문화유산 > 박물관은 살아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월 호야지리박물관  (0) 2020.12.26
용인 등잔박물관  (0) 2020.03.17
서대문 농업박물관  (0) 2020.02.25
공평유적전시관  (0) 2020.02.08
김환기화가  (0) 2019.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