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선생님/이재운선생의 우리말 이야기

[스크랩] 재야(在野)는 뭐하며 사는 사람인가?

윤의사 2018. 8. 9. 11:21
태이자 우리말 사전 2018.7.9 - 21회 / 재야(在野)는 뭐하며 사는 사람인가?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잡학사전 / 이재운 / 노마드 / 552쪽 / 24년 28쇄


재야라는 우리 한자어가 있다.

조선시대 우리 선비들은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었다. 공무원과 서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임금이 불러주면 앉는 영의정 내지 판서급과 종3품 이상의 '가마꾼이 메는 가마 타는 공무원'이 輿, 그나마 '집에서 왕명을 기다리는 사람'은 다 野다.

그래서 가마 타고 출퇴근하는 공무원 輿와 들판에서 때를 기다리는 野만 있다. 요즘에도 국가에서 대신 월급 내주는 운전기사가끌어주는 승용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이 與가 된다.


재야가 성공하는 길은 딱 3가지다.

집권여당(도량형을 재는 기준인 저울추 무게를 결정하는 '가마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 아부질하여 뽑혀가는 수가 있다. 야당이면서 줄곧 임금을 향해 침이 마를 때까지 칭찬을 하고, 시를 쓰고, 산문을 지어 퍼뜨린다. 조선시대 중기 정철이 이런 과요, 야당 의원이면서 용비어천가를 부른 정의당 노회찬, 민주평화당 박지원 같은 류다. 아부와 아첨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르는 게 인간 세상의 법칙이다. 그래서 종질하는 사람이 많은데, 남의 털을 골라주고 배를 뒤집어 살랑거리는 종질도 자연계의 생존법칙 중 하나다.


두번째 재야가 성공하는 길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다. 세조쿠데타, 중종반정, 인조반정, 영조와 노론의 쿠데타, 순조 때 안동김씨 세도, 이하응의 궁중 쿠데타 등이 그 예다. 나는 인조반정에 참여한 집안 후손이라 이 길을 좋아한다. 내 손으로 내가 이루고자 노력한다.


세번째는 마냥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개자추처럼 깊은 면산에 들어가 왕명이 오기를 학처럼 모가지 길게 늘어뜨리고 기다리는 형이다. 김영삼은 정계은퇴 선언 후 낚시질하다 동지들의 부름을 듣고 돌아오고, 김대중은 정계은퇴하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노닐다가 지지자들의 호소를 듣고 돌아와 각각 대통령이 되었다. 손학규는 만덕산에 들어갔지만 때를 맞추지 못하는 너무 늦게 혹은 너무 빠른 걸음으로 내려왔다 길을 잃고, 이회창은 미국에 갔지만 마음이 급해 후딱 돌아오는 바람에 두 번이나 기회를 놓쳤다. 국민의 간절히 부를 때 나와야 하는데, 마음이 급한 사람은 결코 그러질 못한다. 


재야라도 권력욕을 버리고 풀과 나무를 벗삼아 공부하는 게 제일인데, 진짜로 비워야 기회가 올지 말지한데, 그 이치를 모르고 욕심으로 배를 채우니 나이 먹을수록 '목아지'만 길어진다. 

* 목은 사람에게, 모가지는 동물에게 쓰는 말이다. 목아지는 목을 가리키는 경상도 사투리다.


- 김대중은 1992년 대선 실패 뒤 영국 캠브리지로 숨었다. 그러고는 거의 아무도 만나지 않다가 몇몇 사람을 만나 저울질하다 나중에 돌아와 기어이 대통령이 되었다.

노무현은 외로운 처지의 김대중 씨를 영국으로 찾아가 위로를 드렸다. 이런 인연은 2002년 그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진다.

수가 낮은 사람들은 은거한답시고 하는 일없이 온갖 방송, 기자 다 불러들여 잡담이나 늘어놓으며 눈치나 살피다가 스스로 망한다.

출처 : 알탄하우스
글쓴이 : 태이자 이재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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