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화성

수원 화성 행궁2

윤의사 2017. 8. 26. 20:57

수원 행궁은 1996년 복원 공사를 시작하여 2003년 10월에 완공되었다.

고종 11년(1874)에 2만 냥을 들여 화성 행궁을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까지는 잘 보존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일본의 침략을 받으면서 도립병원이라고 할 자혜의원이 건립되고,

학교와 농산물 연구소 등이 차례로 들여와 1923년에는 거의 사라졌었다.

필자가 수원에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행궁 자리에 수원 경찰서와

경기 도립병원, 신풍초등학교, 수원터미널 등이 있었다.
수원 행궁은 평상시에는 화성유수부의 치소로 사용되었다.

전체 557칸으로 의주나 남한산성, 온양의 행궁에 비하여 규모가 크다.
동향으로 배치된 화성 행궁의 정문은 신풍루이다.

 ‘신풍’이란 이름은 일찍이 한나라를 세운 고조가

‘풍 땅은 새로운 또 하나의 고향’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버지의 묘소를 이장한 현륭원이 있는 ‘화성이 고향과 같은 고장’이라는 의미로 편액을 걸게 하였다.

정조 19년(1795)에 정조가 현륭원에 참배할 때 신풍루 앞에서 화성부의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주고,

굶주리는 백성들에게는 죽을 끊여 먹이는 구휼 행사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신풍루

 

정조가 정사를 보던 곳은 유여택(維與宅)이다.

유여택은 평상시에 화성유수가 거처하다가 정조가 행차시에 잠시 머무르며

신하들과 정사를 의논하던 곳이다.

유여택이라는 이름은 『시경』 중에서

‘주나라가 천명을 받아 나라를 크게 하고 집을 주었다.’는 데서 따온 것으로

정조의 입장에서는 ‘화성 유수를 임명하여 내려 보내는 곳’이라는 의미가 된다.

원래 은약헌(隱若軒)이라 하였다가, 정조 20년(1796)에 증축하면서 ‘유여택’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정조 19년(1795)에 현륭원을 행차할 때 정조는 유여택에서 각종 행사에 대한 보고를 받고 하교를 내렸다.



유여택과 현판

 

경룡관(景龍館)은 정조가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경룡'이란 ‘제왕을 상징하는 큰 용’을 뜻하는 것으로, 당태종이 거처한 궁궐 이름에서 따 왔다. 정조는 ‘정관의 치’를 이루어 당나라의 국력을 크게 신장하고 태평성대를 누린 당태종의 궁궐 이름에서 따왔다. 곧 정조는 이 건물에서 휴식을 취하며 우리나라의 태평성대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경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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