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문화사전/밥상 위의 한국사

36가지 떡

윤의사 2016. 11. 4. 20:28

 떡타령이 있다.


왔더니 가래떡/ 울려 놓고 웃기떡/ 정 들라 두텁떡/ 수절과부 정절떡/ 색시 속살 백설기/

오이서리 기자떡/ 주눅 드나 오그랑떡/ 초승달이 달떡이지


지방마다 다르겠지만 여러 가지 떡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매달 명절이 있었다. 명절마다 떡이 있었다.


정월 보름에는 달떡이요, 이월 한식에는 송편이며, 삼월삼질 쑥떡이로다/

사월 팔일에는 느티떡, 오월 단오에는 수리치떡, 유월 유두 밀전병이라/

칠월칠석 수단이요, 팔월 가위 오려송편, 구월 구일 국화떡이라/

시월 상달 무시로떡, 동짓달 동지에 새알심이, 섣달 그믐에 골무떡이로다.


  이렇듯 여러 가지 떡을 만든 우리나라에서 36가지 이상 떡이 있었다.

이것은 명문가에 시집가려면 180가지의 음식을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중에서 36가지의 떡을 만드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떡이란 가루로 만든 곡식을 그릇이나 솥으로 찌거나 삶거나 기름으로 지져서 만든 음식이다. 

떡을 일컫는 한자로는 고(糕), 이(餌), 자(瓷), 편(片, ) 병이(餠餌) 등으로 쓰이지만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병(餠)’이라 불렀다.

경기도 화성시에 병점이 있다. 병점(餠店)은 ‘떡점거리’이다.

바로 호남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던 사람들이 송탄에서 오산을 거쳐 병점을 지나갈 때

쑥고개를 넘으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길가에 늘어선 떡을 파는 가게에서

요기를 했다고 하여 ‘병점’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
  떡은 ‘고(糕)’에서 ‘가루떡 고’이다. 바로 곡식 가루를 이용하여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떡이 만들어진 것은 농경 생활을 시작한 신석기 시대 후반일 것이다.

이때 갈돌과 갈판이 있어 추수에 이용되기도 했지만, 떡을 만들기 위한 도구로도 쓰였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떡을 만든 것은 아마 벼농사를 짓기 시작한 청동기 시대로 추정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나진초도조개무지에서 시루[甑]가 출토되는 것은

떡을 해먹었음을 추정하게 한다.


시루(발해시대, 속초시립박물관)


  우리나라 백성들은 떡에도 의미를 부여하였다.
특히 백일이나 돌, 혼례나 회갑, 제례와 같은 의례에 의미가 있는 떡을 만들었다. 백일이나 돌과 같은 행사에는 어린이와 관련이 있어 아이가 깨끗하고 순수하게 자라길 원하는 마음에서 백설기를 하였다.




백설기


또한 아이가 살아가면서 나쁜 일을 당하지 말라는 뜻에서 액을 물리치고 귀신을 쫓는 색인 붉은색의 찰수수경단을 만들었다. 우주 세계를 만드는 다섯 가지 원소인 물(水), 나무(木), 쇠붙이(金), 흙(土), 불(火)의 오행(五行)과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 이것을 바탕으로 온화, 양순, 공손, 검소, 겸양의 오덕을 표현하여 아이들이 주위 사람과 두루 어울려 조화롭게 살라는 뜻에서 오색송편을 만들기도 하였다. 특히 백일떡은 백 집에 떡을 나누어야 아이가 아무 탈없이 자라며 복을 받는다고 하여 이웃에 떡을 나누어 주었다.



떡의 다양한 모양을 내기 위한 떡살


혼례를 할 때 하는 대표적인 떡은 봉치떡이다. 봉치떡은 찰시루떡에 붉은 팥고물을 얹어 만들어 붉은 색으로 앞으로 닥쳐올 나쁜 일을 피하고, 찹쌀은 시어머니의 사랑과 밤을 넣어 부부 관계가 원만하여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대추를 넣어 자식을 많이 생산하라는 의미이다. 회갑 때는 자식들이 부모님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사시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갖은편이라 하여 백편ㆍ꿀편ㆍ승검초편을 만들었다.


봉치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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