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생산된 곳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서리다.
유물 조사를 통해 신라말에서 고려 초기 사이에 생산된 것으로 확인된 우리나라 최초의 백자 유적지는 '고려백자 요지'란 명칭으로 불리는데, 그간 발굴조사만 해놓은 채 오랜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용인군(발굴당시 인구 8만명)이 감당하기에는 워낙 큰 역사유적인데 그간 정부지원이 없어 안타까웠다.
그러다가 올해 처음으로 용인시의 강력한 요청으로 <고려백자 요지>의 가치를 인정한 문화재청이 요지 관련 기초 예산을 마련해주었다. 아직은 주변 땅을 매수하고 재발굴하는 정도의 예산이지만, 일단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준 데 대해 용인고려백자연구소 차원에서 큰 감사를 드린다.
용인고려백자연구소는 작년에는 고려백자 복원 재현 행사를 갖고, 고려백자의 가치에 대해 널리 알린 바 있다. 올해 겨울에는 고려백자에 쓰인 백토가 어디서 생산되었는지 발굴할 예정으로 있다.
용인시 이미지를 100만 시답게 가꿔보려 노력해온 정찬민 용인시장이 문화융성 차원에서 추진해온 <최초의 고려백자 요지터>와 세계 유일의 대몽 항쟁지인 <처인성>, 그리고 신라시대 유적지인 <보정동 고분군>까지 한꺼번에 묵은 숙제를 풀어내었다. 이제야 문화시장의 자격을 제대로 갖춘 셈이다.
천년 문화의 옷을 입을 때 용인시도 100만 시민에 걸맞는 품격을 갖추는 것인데, 그간 인구 증가에 떠밀려 너무 웃자라다보니 우선 순위에 밀려 문화가 소홀한 면이 있어 늘 우울했는데,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 용인고려백자 복원 재현 전시회(2015.10)
용인 서리 요지는 우리나라 최초로 백자를 생산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긴 가마를 갖고 있어
현재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의 신라시대 고분군. 이 시대에 80여기의 신라 지배 계급 고분이
중부지방인 용인 지역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곳에서 가까운 석성산성에서는
천자만이 지낼 수 있는 천제를 지낸 유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처럼 용인 석성산성에서도 천제를 지낸 것이다.
- 이곳이 바로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전적지다. 몽골군을 이긴 군대도 없거니와 몽골군 총사령관이 전투 중 전사한 사례도 없는데,
바로 이곳 처인성에서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이가 김윤후 등 처인성 의병들이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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