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선생님/이재운선생님의 칼럼

[스크랩] 오늘 책이 나왔다 <가짜화가 이중섭>

윤의사 2016. 7. 6. 19:43

고맙다. 

나는 소설을 썼을 뿐인데 편집하고, 교정하고, 디자인하고, 인쇄하고, 제본하고, 배본하고, 영업하고, 출판사는 할 일이 많다.

막상 원고 넘긴 뒤부터 나야 한가하게 지내며 휴식하지만 출판사 입장에서는 큰 돈을 투자해야 하는 사업이고, 비지니스다. 더 크게 보면 산업이다.

출판사 식구들, 인쇄제본소, 서점 등을 위해서라도 독자들이 즐겨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출판사에서 엄청난 양의 보도자료를 만들었다. <표지 및 본문 디자인은 작곡가 김순곤 씨가 해주었다>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6년, 소설 《가짜화가 이중섭》에서 이중섭의 신산했던 삶을 되살려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쓸 줄 알았다면 구상 시인에게 이중섭의 삶에 대해 자세히 여쭤봤을 거라며 못내 아쉬워했지만, 이허중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통해 천재 화가 이중섭의 고단했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냄으로써 그 아쉬움을 어느 정도 달랜 셈이다. 

그럼 소설 속으로 잠깐 들어가보자. 이 소설의 주인공인 ‘가짜화가’ 이허중은 이중섭이 청량리뇌병원에 입원해 있던 1956년 봄에 약 2개월 동안 같은 병실에 입원했던 청년 화가다. 이허중이 이중섭을 스승으로 모시면서부터 그에게는 이중섭이 겪은 것보다 더 큰 시련들이 잇따라 몰려오고, 습작으로 그린 이중섭 그림 모사품이 야쿠자의 손에 넘어가면서 파란만장한 현대사의 질곡 속으로 빠져든다. 

어느새 이중섭 작품만을 전문적으로 모사하는 가짜화가로 살아가는 이허중에게 3ㆍ15부정선거와 4ㆍ19혁명이 폭풍처럼 들이닥치고, 이윽고 5ㆍ16쿠데타가 해일처럼 덮쳐 그를 집어삼킨다. 마치 이중섭에게 달려든 식민지, 태평양전쟁, 공산정권, 6ㆍ25전쟁처럼……. 이중섭이 끝내 가지 못한 길, 갈 수 없던 길을 기어이 가려 했던 청년 화가 이허중, 그는 마침내 국토건설단에 끌려가 제주도 5ㆍ16도로 건설 현장에 투입되는데…….

프롤로그
01. 이중섭 그림을 구해오라
02. 춘화 쇼
03. 부산항
04. 지하 화실
05. 이중섭을 찾아서
06. 체포영장
07. 그림 그리는 깡패
08. 계략
09. 배후
10. 위작 전시회
11. 폭로
12. 배신
13. 정신병원에서 만난 스승
14. 소각되는 작품들
숨은 이야기
에필로그
이중섭 연보




 최근작 :<가짜화가 이중섭>,<황금부적>,<소설 장영실> … 총 136종 (모두보기)
 소개 :
1958년 9월 27일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 3학년 때 쓴 장편소설 《아드반》을 문장사에서 출간하고, 4학년 때 쓴 《목불을 태워 사리나 얻어볼까》를 출간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1년 11월에 첫 출간한 《소설 토정비결》은 3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로, 토정 이지함 선생의 운명론적인 민족성과 예언적 인생관, 그리고 한국인만의 독특한 해학성을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이후 한국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다양한 방면으로 창작 활동을 펼쳐 수많은 저작물을 발표했다. 성격분석프로그램 바이오코드를 개발했으며, 관련 연구서로 《바이오코드 개론》, 《바이오코드 응용》, 《1% 인연의 힘》, 《브레인워킹》 등이 있다. 
《황금부적》, 《상왕(商王) 여불위》, 《천년영웅 칭기즈 칸》, 《당취(黨聚)》, 《하늘북소리》, 《청사홍사》, 《바우덕이》, 《갑부》, 《징비록》, 《정도전》, 《사도세자》 등의 소설을 출간했으며, 1994년부터 우리말 어휘 연구를 시작하여 우리말 시리즈인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1000가지》,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 한자어 1000가지》,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숙어 1000가지》 등을 펴냈다.  사진/장영진

가짜화가 이중섭을 통해 진짜화가 이중섭의 삶을 되살리다!!
작가 이재운은 대학 시절 이중섭의 절친 구상 시인으로부터 시를 배웠다. 대학원 조교로 있을 때는 구상 시인의 개인 심부름을 하고, 시인의 서재인 관수재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구상 시인은 화가 이중섭의 원산 친구로,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절친이었다. 이 무렵 구상 시인은 작가에게 가끔 이중섭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때만 해도 이재운 작가는 화가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들어도 되묻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작가는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6년, 소설 《가짜화가 이중섭》에서 이중섭의 신산했던 삶을 되살려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쓸 줄 알았다면 구상 시인에게 이중섭의 삶에 대해 자세히 여쭤봤을 거라며 못내 아쉬워했지만, 이허중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통해 천재 화가 이중섭의 고단했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냄으로써 그 아쉬움을 어느 정도 달랜 셈이다. 
그럼 소설 속으로 잠깐 들어가보자.
이 소설의 주인공인 ‘가짜화가’ 이허중은 이중섭이 청량리뇌병원에 입원해 있던 1956년 봄에 약 2개월 동안 같은 병실에 입원했던 청년 화가다. 
이허중이 이중섭을 스승으로 모시면서부터 그에게는 이중섭이 겪은 것보다 더 큰 시련들이 잇따라 몰려오고, 습작으로 그린 이중섭 그림 모사품이 야쿠자의 손에 넘어가면서 파란만장한 현대사의 질곡 속으로 빠져든다. 
어느새 이중섭 작품만을 전문적으로 모사하는 가짜화가로 살아가는 이허중에게 3ㆍ15부정선거와 4ㆍ19혁명이 폭풍처럼 들이닥치고, 이윽고 5ㆍ16쿠데타가 해일처럼 덮쳐 그를 집어삼킨다. 마치 이중섭에게 달려든 식민지, 태평양전쟁, 공산정권, 6ㆍ25전쟁처럼……. 
이중섭이 끝내 가지 못한 길, 갈 수 없던 길을 기어이 가려 했던 청년 화가 이허중, 그는 마침내 국토건설단에 끌려가 제주도 5ㆍ16도로 건설 현장에 투입되는데…….

위선과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 절망한 천재 화가 이중섭
이중섭, 세상에 태어나고 보니 아버지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부자였다.
서당에서 한학을 익히다가 오산학교에 들어가 예일대 유학파 출신 화가 임용련, 백남순 부부의 집중 지도를 받았다.
그 뒤 미술에 뜻을 두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미술을 배우고,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 마사코를 만났다.
원산으로 돌아와 1945년 마사코와 결혼했다. 행복했다.
이듬해 큰아들이 태어나지만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났다.
이어서 공산정권이 서면서 탄압이 시작되고 둘째와 셋째가 태어났다.
6ㆍ25전쟁이 일어나면서 집안의 기둥인 형이 행방불명되고, 가산마저 잃었다.
1ㆍ4후퇴 때 늙은 어머니와 그림을 남겨둔 채 흥남부두를 통해 피난, 부산에 잠시 머물다가 제주 서귀포로 건너가 살았다. 가난에 지쳐 도로 부산으로 돌아갔다.
범일동 판잣집에서 온 가족이 굶주림과 전쟁의 두려움에 휩싸여 참담하게 살았다.
결국 생존이 불가능해지자 부인 마사코와 두 아들은 피난선을 타고 고국 일본으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이중섭은 다시 가족을 불러 같이 살기 위해 열심히 그림을 그리지만 팔리지는 않고, 가까스로 팔려도 전쟁에 지친 친구들 술값으로 탕진했다.
어머니를 두고 온 죄책감, 고향에 다시 가지 못한다는 두려움,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슬픔, 영양실조 등으로 정신분열 증세를 보였다.
춘화 작가라는 비난, 전쟁이 나도록 북에 남아 있었다는 이유로 빨갱이라 부르는 친구, 굶주림, 외로움, 절망 등으로 정신 상태가 점점 더 나빠졌다.
1956년 41세에 정신질환을 앓는 중에 간염으로 사망했다.

이중섭은 죽을 때까지 일본에 있는 처자식을 미친 듯이 그리워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들에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갈 수도 있었고, 실제 가기도 했지만 그는 끝내 돌아왔다. 그러다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으로만 퍼내고 퍼내다 지쳐 끝내 재회하지 못한 채 마흔한 살 나이에 덜컥 죽고 말았다. 그는 펜으로, 붓으로, 손톱으로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려 노력했지만 그림 위로 떨어져 내리는 그 무수한 절망과 덧없는 시간을 결코 이겨내지 못했다.

【출판사 리뷰】 

20세기를 뒤흔든 희대의 위작 스캔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독일군 치하에 있던 네덜란드는 나치에 부역한 매국혐의자들을 줄줄이 체포하기 시작한다. 이런 가운데 한스 반 메이허런이라는 화가도 나치 부역자로 체포되어 법정에 선다. 그는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나치에 팔아넘긴 혐의로 기소되었다. 언론은 그를 가리켜 네덜란드의 영혼을 팔아먹은 매국노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한스는 자신의 작품을 혹평해온 평론가들의 허상과 위선을 폭로하기 위해 일부러 페르메이르의 위작을 만들어 화상(?商)을 통해 나치 실력자 괴링에게 팔아넘겼다고 주장한다. 모조그림일 뿐이라는 것이다. 
“미술 감정가들이 진품으로 판정한 페르메이르의 초기 작품들은 사실 내가 그린 것입니다. 특히 괴링에게 판 위작들은 파란색을 표현할 때 17세기 안료인 울트라마린 대신 코발트블루를 섞어 나중에라도 위작임이 밝혀지도록 했습니다.”
그의 증언으로 네덜란드 미술계는 발칵 뒤집힌다. 네덜란드 국민들은 나치 실력자 괴링에게 위작을 팔고 약 1500억 원(165만 굴덴)을 받은 그를 가리켜 나치를 조롱한 위대한 화가로 치켜세웠다. 이에 네덜란드 정부와 판사들은 그에게 실제로 그림을 그려볼 것을 명령한다. 

재판 받는 한스 반 메이허런(왼쪽).
<박사들 사이의 그리스도>를 실제로 
그려 보이는 메이허런(오른쪽).

캔버스가 들어오고, 붓과 물감이 마련되었다. 판사, 검사, 변호사, 정부 관료 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있는 가운데 그는 붓을 잡았다. 아니나 다를까, 한스는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기막힌 솜씨로 그려낸다. 이로써 그는 나치 부역 혐의는 벗지만, 네덜란드 미술계를 조롱한 죄가 인정되어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한스 사건 이후 수백 점이나 되던 페르메이르의 작품은 78점으로 줄어들고, 나중에는 56점만이 진품으로 인정되었다. 그마저도 정밀 감정 결과 페르메이르가 그린 진품은 약 30점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 30점에 대해서조차 누구도 페르메이르의 진품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한다. 진품과 위조품을 물감이나 종이의 질 차이 등으로 구분하려는 것은 골동품에나 해당되는 말이다. 화가의 혼이 들어갔느냐, 들어가지 않았느냐, 이를 감정할 방법이 없는 한 진품과 위조품의 싸움은 끝날 수가 없다.

가짜가 진짜 같고 진짜가 가짜 같은 대한민국 미술판
이 같은 위작 스캔들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2007년 당시 45억 2000만 원으로 최고의 낙찰가를 기록했던 박수근의 ‘빨래터’를 비롯하여 이중섭, 천경자 등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그림이 위작 논란에 휩싸였다. 미술 관계자들은 박수근과 이중섭의 위작이 적어도 3000여 점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2016년 지금도 위작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나라 현대 미술계의 거장 이우환 화백이 위작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대한민국 위작 스캔들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천경자 ‘미인도’ 내가 그렸다” 서화 위조범 권씨 자백 파문
지난 91년 진위 논란으로 화단을 떠들썩하게 한 원로 화가 천경자 씨(75)의 ‘미인도’를 위작했다는 진술이 나와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1999년 7월 8일 경향신문)

이중섭 위작 판단, 쉬운 결정?
‘국민 작가’로 사랑받아온 이중섭, 박수근 작품 위작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지난 10월 7일 증거물로 제시된 작품들이 모두 위작이라는 감정 결과가 나왔다. 이번 결과로 인해 이중섭, 박수근 작품에 대한 감정 의뢰가 폭증하고 있는 등 미술계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2005년 11월 10일 민중의 소리)

위작논란 ‘박수근 빨래터’ 법원 간다
위작 논란에 휩싸여온 박수근 화백의 유화 ‘빨래터’가 결국 법원에 의한 감정에까지 가게 됐다. …… ‘빨래터’는 지난해 서울옥션의 경매에 출품되기 전 자체 감정을 받은 이후 미술잡지 아트레이드가 위작 의혹을 제기한 이후 한국미술품감정협회의 재감정, 그 후 동경예대와 서울대의 성분 분석 및 과학 감정에 이어 법정에까지 오르는 것. (2008년 12월 18일 서울경제)

바람 잘 날 없는 미술판… 반전 꾀할 콘텐츠마저 빈곤
2016년 여름 국내 미술판은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 감정가들 사이의 암투와 무자료 밀실 거래 관행이 화근을 만든 이우환 위작 시비, 법정으로 간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진위 논란이 잇따르며 이해관계에 따라 감정이 휘둘리는 미술시장의 구린 이면이 부각됐다. 팝아티스트를 자처해온 가수 조영남 씨가 무명작가에게 자신의 그림 제작을 맡겼다는 이른바 ‘대작 사건’이 몰고 온 타격도 컸다. 과거 미술품 비자금 파문이 있었지만, 요즘처럼 미술판 치부가 대중 앞에 적나라하게 노출되면서 이슈가 된 것은 전례 없던 일이다. (2016년 6월 20일 한겨레)

‘미인도’ 이어 스케치도? 천경자 작품 또 위작 의혹
서울옥션 경매 출품 예정이던 천경자 화백의 스케치 연작에 위작 의혹이 제기돼 경매가 취소됐다. 서울옥션은 29일 여름경매에 내놓을 예정이었던 천경자의 ‘기행스케치-화문집’의 출품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16점으로 구성된 ‘기행스케치-화문집’은 천 화백이 작품 구상을 위해 해외를 여행하던 중 그린 것으로, 1983년 지인의 5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선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6년 6월 29일 한국일보)

이우환 위작 논란 ‘제2의 미인도 사건’
이우환 화백(80)의 위작 논란이 제2의 ‘미인도’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천경자 화백은 논란이 된 작품이 가짜라고 주장하고, 이 화백은 진짜라고 주장하는 차이가 있을 뿐, 작가가 국가권력을 상대로 싸운다는 점에서는 같다. 이 화백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민간 감정기관들의 과학 감정을 토대로 한 경찰 수사 결과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나서 위작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6년 6월 30일 경향신문)

이처럼 위작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바로 돈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미술품은 섣불리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은? 2015년 현재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무려 1967억 원에 팔린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이란 작품이다. 
그런데 정작 파블로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그림을 사며 돈을 내는 행위는 예술의 본질적 가치와는 관계없다. 그들이 알 수 없는 말로 칭송하는 것은 단지 돈에 대한 탐욕 때문이다.”


출처 : 알탄하우스
글쓴이 : 알탄하우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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