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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3일은?

윤의사 2013. 4. 14. 11:52

4월13일, 어제는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94주년이 된다.

그러나 텔레비젼을 비롯한 언론에서는  임시정부 수립일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아쉬움이 남았다.

하기는 나도 블로그에 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글을 오늘에서야 올리니 말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을 통해 우리 민족은 조직적인 독립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전에 연해주에 이상설에 의하여 조직된 대한 광복군 정부가 있었지만,

러시아와 일본의 방해로 큰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3․1운동 이후에 한성과 노령 등 7개의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나,

힘이 분산되었기에 이를 하나로 합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수립되었다.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은 아직 일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며,

상하이에 많은 강대국들이 진출하여 있기에 세계 여러 나라와의 외교 활동이 편리한 곳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민주 공화정을 채택하였으며, 대통령제를 갖추고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국회를 대신한 의정원에서 뽑았다.

그러나 신채호를 비롯한 임시정부의 강경파들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을 반대하였다.

이승만이 1919년 2월에 미국 대통령 윌슨에게 조선에 대한 국제연맹의 위임통치(강대국에게 자국 국민을 대신해 다스려달라고 하는 것으로 후에 신탁통치로 바뀜)를 청원한 일이 있었기에

'완전독립', '절대독립'을 추구하는 신채호를 비롯한 강경파들의 생각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의정원의 표결 결과 이승만은 탄핵되었으며, 2대 대통령으로 박은식이 선출되었다.

이후 임시정부는 혼란을 겪다가 김구가 주석으로 취임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김구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로부터 독립을 하는 1945년 8월 15일까지 임시정부를 이끌면서

항일 투쟁과 외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 뒤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에 우리 민족의 견해를 전달하기 위하여 김규식을 외교총장으로 파견하여 우리의 뜻을 전하게 하였다. 미국에는 유럽과 미국을 상대로 외교 활동을 벌이는 구미위원부를 설치하여 우리나라의 독립 문제를 강대국들이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독립신문을 발행하여 국내에 있는 국민들에게 독립운동의 소식을 알리고 독립 운동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또한 연통제를 실시하여 국내의 독립 운동 조직과 연락을 하였으며,

국내에서 독립 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일도 담당하였다.

연통제는 각 도에는 독판, 부에는 부장, 군에는 군감, 면에는 면감을 두어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행정 사무를 국내에서 집행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자 대일선전포고를 하면서,

한국 광복군을 조직하여 대일전쟁을 수행하여 독립의 기초를 닦았다.

 

 기념식이 열린 백범기념관

 

김구주석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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