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국수만한 게 없다.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음식인 국수가 6.25전쟁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매우 귀한 음식이었다.
오늘날 잔칫집에 가면 갈비탕 등 다양한 음식이 나오지만,
예전에는 국수가 잔칫집의 대표음식이었다.
길다란 면발이 두 사람이 '장수'하면서 ‘백년해로’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흔히 언제 결혼할 거냐고 물을 때 "언제 국수 먹여 줄 거냐"고 말했다.
국수가 회갑연, 혼례 등 경사스런 날 먹는 특별한 음식이었기에 잔치국수라고 부르게 되었다.
옛날에는 밀가루가 귀해서 메밀 등을 이용해서 국수를 만들어 먹었었다.
<고려도경> ‘잡속(雜俗)’편에는 “밀가루 값이 비싸 경사 때가 아니면 먹지 못한다”고
기록돼 있는 것으로 보아 회갑연이나 혼례 등 경사스런 날이나 먹을 수 있었기에
잔치국수인 것이다.
일반 서민들은 경사 때나 먹을 수 있으며,
귀족들이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벼농사 중심이었기에 밀가루는 귀했다.
메밀을 이용한 국수 가락은 끊어졌기에 길게 뽑을 수가 없으므로,
밀가루만한게 없었다.
가마솥에 끓인 시원하고 담백한 육수를 국수에 넣고 실고추 등 고명을 얹어 먹는 그 맛은 어느 음식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실제 서민층은 그야말로 누가 혼례라도 해야 밀국수를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잔치국수가 대중화된 건 일제 강점기 이후이다.
일본이 쌀을 본토로 가져가고 조선인에게 밀과 보리, 콩 등을 주식으로 삼기 위해
밀을 본격적으로 재배하면서부터이다.
그 이후 한국전쟁으로 미국에서 원조되는 밀가루에다,
싼값에 밀가루가 수입되면서 밀국수는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대중 음식으로 변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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