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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왜 중국편을...

윤의사 2011. 1. 4. 10:34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아주 긴밀하다. 모든 나라가 북한의 소행으로 인정한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폭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 편을 드는 중국이었다.

  그렇다면 왜 중국은 북한편을 드는 것일까? 우선 대한민국에 의한 남북한 통일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한반도에 계속 영향을 끼치고 싶은 중국이기에 대한민국에 의한 통일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에 중국의 입김을 계속 작용하려면 북한의 존재가 필요할 것이다. 북한을 통해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도 있다. 둘째는 북한의 자원이다. 지금 중국은 북한에서 나는 마그네사이트와 철을 비롯한 지하자원의 개발권을 가지고 있다. 값싸게 획득한 지하자원 개발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지하자원, 특히 철에 대한 중국의 욕심은 옛날부터 있었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중국의 침략을 수없이 받았다. 대규모로 고구려를 침입한 것은 영양왕 이후이다. 수나라는 문제와 양제가 4차례에 걸쳐서 고구려를 침입하였다가 을지문덕장군에게 살수에서 크게 패하여 물러났다. 수나라는 고구려를 침입했던 후유증으로 멸망하였다.

  수나라의 뒤를 이은 당나라에서 태종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태종은 당나라를 대표하는 임금으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전개하면서 눈부신 업적을 이루자, 새로운 ‘일’을 찾아나서게 된다. 그것은 바로 정복전쟁이었다. 대륙에 인접한 약소민족들은 이미 평정한 터라서 태종의 눈길은 자연히 동쪽의 끝나라 고구려로 향했다.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태종은 보장왕 4년(645) 고구려의 연개소문을 응징하고 수나라 군사들의 한을 풀어준다는 구실로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고구려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일찍이 수나라의 양제도 수 백만의 군사를 동원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였지만, 결과는 그 자신의 파멸로 끝나고 말았다. 고구려는 당제국에 인접한 나라 중에서는 보기 드문 군사강국이었다.

태종은 친히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완전한 실패였다. 당 태종의 정벌군은 양만춘 장군이 지휘하는 안시성을 1년 간이나 공략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였다. 그 사이에 겨울이 닥쳐왔고, 군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태종은 어쩔 수 없이 군사를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 원정의 실패는 당 태종에게 치욕적인 일이었다. 그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다가 자리에 드러눕고 말았다.

태종에게 아픔을 준 고구려 원정은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단지 고구려의 연개소문을 응징하고 수나라 군사들의 한을 풀어준다는 구실이 아니었다. 태종은 주변국을 정복하면서 드넓은 지역을 통치하자 많은 군사와 무기, 그리고 필요한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농기구를 만들 철이 필요했던 것이다. 철은 요동과 만주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었기에 당나라 태종으로서는 요동과 만주 지역이 탐나는 곳이었다. 그리하여 겉으로 드러난 당나라 태종의 뜻과는 달리 진심은 넓은 지역과 많은 군사력, 그리고 식량 증산을 위한 농기구를 만들기 위한 대량의 철이 필요했기 때문에 고구려를 침입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