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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도 동물병원이 있었나요?

윤의사 2011. 1. 6. 11:56

요즈음 구제역때문에 난리이다. 어서 빨리 진정되기를 바랄 뿐이다.

동물들이 아프면 요즈음에는 동물병원에 가서 치료하면 된다.

그렇다면 옛날에는 어떻게 동물을 치료했을까?

 옛날에는 애완동물로 주로 매를 많이 키웠다. 그리고 소나 말을 중요하게 생각한 동물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들 동물들이 아픈 것을 자연계의 이변으로 받아들였다. 곧 동물의 질병이 나라의 길흉(吉凶)과도 관련이 있다고 믿은 것이다. 특히 소나 말은 전쟁이나 농사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가축이었기에 질병 치료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하여 소나 말의 질병을 담당하는 관청이 있었으니, 고구려나 백제에서는 일자(日者) 또는 일관부(日官部)이다. 고려시대에도 일관(日官)이 가축의 질병을 담당하였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주술적인 방법으로 소나 말을 치료하기도 하였다. 말과 관련이 있는 방성-房星:天馬駟星, 일명 마조(馬祖)라고도 함-을 향하여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이를 마조제(馬祖祭)라 하며, 제사를 올리기 위해 만든 단을 마조단(馬祖壇)이라 하였다.

  삼국시대부터 전해진 수의학은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더욱 발전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말을 관장하던 태복시(太僕寺)에서 가축의 질병을 치료하면서 이에 관한 『신편집성우마의방(新編集成牛馬醫方)』이라는 전문서적까지 나왔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여진과 왜구에 대한 방비와 농본정책으로 인하여 말과 소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병조의 사복시 수의(獸醫)가 배치되어 소나 말의 질병치료를 담당하였다. 특히 말의 질병을 주로 맡았기에 그 명칭을 마의(馬醫)라고 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사복시에 마의(馬醫) 10인이 있고 종육품(從六品)에서 종구품(從九品)까지이다. 종육품은 안기(安驥) 1명을 비롯하여 종칠품 조기(調驥) 1명, 종팔품 이기(理驥) 1명, 종구품 보기(保驥) 1명이 있었다. 그리고 말의 병의 치료를 위해 체아직(遞兒職)을 두고 마의방(馬醫方) 등을 전습케 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수의학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왔으니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 『상마경(相馬經)』, 『마경초집언해(馬經抄集諺解)』, 『마의방(馬醫方)』, 『원형마료집(元亨馬療集)』 등이 나왔다.

  조선시대 수의학이 발전한 것은 광해왕때 활약한 이서의 영향이 크다. 성리학의 영향으로 기술학을 천시하던 시대에 이서는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인 효녕대군의 후손으로 양반들이 천시하던 말에 관련된 『마경언해(馬經諺解)』를 저술하여 조선시대의 수의학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

  조선시대에 애완동물로 널리 키운 매에 관련된 수의학서적도 있다. 고려시대 이래 매를 날려 꿩을 잡는 사냥의 풍속이 지배층 사이에 널리 있었으므로, 매에 대한 의학적 지식의 필요성에 의하여 세종대왕 때 안평대군이 『고본응골방(古本鷹鶻方 )』이라는 책을 남겼다.

  그러므로 오늘날처럼 개인이 하는 동물 병원은 없었지만 군사, 경제적으로 꼭 필요했던 가축의 치료를 위하여 나라에서 이를 관장하는 관청을 두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