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대통령으로 일하는 한편 미국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쳤다. 광복이 되어 대한민국의 첫 대통령이 되었으나, 오랫동안 정권을 틀어쥐고 부정부패를 일삼다 4.19혁명으로 물러났다. 이승만의 또 다른 약점은 바로 6.25 전쟁을 치르면서 국민을 기만한 것이었다. 솔직하게 전쟁 상황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피난을 갔다면 전쟁에 의한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군이 북진을 하고 있다고 국민들에게 라디오를 통해 발표했으니 피난을 가지 않은 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보게 하였다. 이승만의 다른 이름은 승룡, 호는 우남이다.
이승만은 가난한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했으나, 과거 시험이 없어지자 신학문을 배우러 배재 학당에 들어갔다. 그 이듬해 명성 황후가 일본 자객들에게 살해당하자, 그는 친일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쫓기는 몸이 되었다. 이 무렵 개화 사상에 눈을 떠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마침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이 만든 독립협회에 들어가면서 활발한 민중 계몽 운동을 펴 나갔다. 하지만 이승만은 정부를 뒤엎으려 했다는 모함을 받고 독립협회 간부들과 함께 감옥에 갇혔다가 7년 만에 풀려났다.
외교 활동으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쓰다
을사조약이 맺어지자, 이승만은 고종의 밀서를 지니고 미국으로 건너가 도움을 요청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분간 미국에 머물면서 공부하기로 한 이승만은 조지 워싱턴 대학, 하버드 대학을 거쳐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에 한일 합방 때 귀국해 조선기독교청년연합회에서 일하다 ‘안악 사건’으로 붙잡혔으나 곧 풀려났다. 이승만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교육, 언론 활동에 힘쓰다가, 3.1 운동 후에 조직된 상하이 임시 정부의 첫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에 머무르면서 임시 정부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미국의 힘에 기대 독립을 꾀하려는 태도를 보이자 심한 반발을 받았다. 결국 대통령에서 쫓겨났으나, 그는 임시 정부의 결정을 무시한 채 나름대로 독립 운동을 해 나갔다. 주로 국제 회의에 참가해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고, 워싱턴, 하와이 등에서 항일 투쟁과 외교 활동을 펼쳤다.
독재자가 된 대한민국의 첫 대통령
8.15 광복이 되자 이승만은 귀국하여 우익 세력을 이끌며 좌익 세력과 투쟁하였다. 그러다 남한 단독 정부 수립 계획을 발표한 뒤,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지면서 첫 대통령이 되었다. 이승만은 공산주의 운동을 철저히 누르고, 일본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취하였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과 유엔의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1952년에 계엄령을 선퍼해 헌법을 고친 뒤 다시 대통령이 되었다. 이승만은 그 뒤로도 제멋대로 법을 뜯어 고치면서 계속 집권하여 정치 발전을 가로 막았다. 급기야 1960년에 대대적인 부정 선거를 치르면서 네 번째로 대통령이 되었으나, 4.19혁명으로 자리에서 쫓겨나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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