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이야기/남한산성 13

남한산성 장경사

장경사는 인조 2년(1624)에 남한산성을 다시 건설하면서 건립되었다. 산성을 쌓을 때 전국의 승군을 소집하여 성을 쌓게 하였다. 각성선사를 도총섭으로 삼아 팔도의 승군을 모집했는데, 숙식을 위하여 만들어진 절이다. 효종이 북벌운동을 벌일 때에는 이 절에 총섭을 두고 승군을 훈련시키며, 전국의 승군을 총지휘하는 국방사찰이었다. 고종 때까지 250여년간 북한산성과 함께 270명의 승려들을 번갈아 주둔시키면서 호국성지의 역할을 하였다. 장경사는 주로 충청도 출신의 승군이 머물렀으며, 1907년 일제의 군대해산로 무기고를 비롯한 절의 건물들을 폭파했으나, 장경사는 피해가 적어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다. 장경사 일주문(평택종주산악회) 장경사 대웅전(평택종주산악회) 장경사범종각, 100년만에 봉은사에서 장경사로 ..

남한산성 암문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문이다. 암문은 비밀스러운 통로이다보니 성문보다 규모가 작으며, 지붕이나 누각도 없다. 암문은 유사시 적의 눈을 피해 식량이나 무기 등을 성안으로 가져오며, 적을 피해 구원 요청이나,원병이 오는 통로이다. 때로는 적을 기습할 때 군사들이 은밀히 이동하기도 하였다. 암문의 성 안쪽은 옹벽이나 흙을 쌓아 적으로부터 성이 위협당할 때 옹벽이나 흙을 무너뜨려 메꾸기도 하였다. 삼국시대부터 암문은 존재했지만 본격적인 모습을 갖춘 것은 조선시대 이후이다. 남한산성에는 암문이 16개 있다. 그 중 본성에는 11개, 봉암성에 4개, 한봉성에 1개가 있다. 원성의 암문은 남쪽에 4개, 동쪽에 2개, 북쪽에 3개, 서쪽에 1개가 있다. (사진 출처:평택종주산악회) 제1암문, 성밖 제1암문(..

남한산성

경기도 성남과 광주에 걸쳐있는 성으로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다. 해발 497m의 청량산을 둘러싼 성은 약 8km이며, 신라 문무왕 때 처음 성을 쌓고 이름을 주장성이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에 ‘문무왕 13년(673)에 한산주에 주장성 (〈동국여지승람〉에는 일장성이라고 나온다)을 쌓았는데, 성의 둘레는 3,460보였다.’ 고 기록되어 있다. 곧 주장성은 곧 남한산성이고, 당시 돌로 쌓은 최대 규모의 산성이라고 할 수 있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성이라고 전하기도 하지만 발굴 결과 주거지와 저장 구덩이만 확인되었을 뿐 성곽의 터는 보이지 않았다. 청량산의 주변은 급경사를 이루어 방어에 유리하지만, 성 안쪽은 경사가 완만하여 거주하기에도 좋은 편이다. 지금도 성 안에서는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관광객들을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