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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총이 스투파양식이라면서요?

윤의사 2006. 11. 6. 14:35
 

불교에서 불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부처님을 대신해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 불탑이다.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전, 고타마 싯다르타는 인도의 동북부 지방 히말라야 기슭의 한 작은 나라인 카필라바스투에서 태자로 태어났다. 싯다르타는 ‘인간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문제에 고민을 갖고 29세 때에 부귀영화가 보장된 왕자의 자리를 박차고 행자의 길로 들어섰다. 6년간 인도의 전통적 수행 방법으로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35세 때 네란자라 강변의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샛별이 뜨는 것’을 보고 크나큰 깨달음을 이루어 진리의 완성자인 부처님이 되었던 것이다.

  고통받는 백성들에게 널리 자비 사상을 가르치고 80세를 일기로 열반(죽음)에 들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열반 후에 다비식(화장법)을 거쳐 사리를 부처님과 관계있는 8부족에게 나누어 봉안한 곳이 바로 스투파(탑)이다. 아소카왕은 이 사리를 가루로 8만 4천과를 만들었다.

  스투파는 대개 5층에서 9층 사이로 한 변의 길이가 35M 내외, 높이가 14M 내외이다.

  장군총은 화강암 표면을 정성을 들여 깎아 7층의 피라미드형으로 쌓았는데, 한 변의 길이는 30M, 높이는 14.5M이다. 기단의 둘레에는 4M 폭으로 돌을 깔았으며, 그 바깥 둘레에 30M 폭으로 자갈을 갈아 왕릉임을 표시하였다. 3층에 널방을 두고 2개의 널받침을 만들고 시신을 안치한 것으로 추측된다.

  스투파와 장군총을 비교하면 규모에 있어 비슷하며 단지 옥개석만 없을 뿐 7층으로 만들어져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스투파의 형식을 빌려 고구려 백성들이 장수왕에게 최대한 경의를 나타낸 것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