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2월12일 오늘의 역사, 선통제 부의 퇴위, 청나라 멸망

윤의사 2025. 2. 12. 19:38

부의는 1906년 청나라 제11대 황제인 광서제의 동생 순친왕 재풍과 서태후의 측근인 대학사 겸 군기대신 영록의 딸 유란의 아들로 순친왕부에서 태어났다.

1908년 11월 14일 광서제가 세상을 떠나자 당시 강력한 권력자인 서태후의 지명으로 3세의 나이로 1908년 12월 2일 베이징의 자금성 태화전에서 즉위하였다. 

이때 청나라는 관리와 왕족들의 부정부패, 서구열강과 일본의 침략으로 반식민지 상태였기에 한족들은 혁명을 거쳐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을 몰아내고자 했다. 

만주족을 쫓아내고 한족을 부흥시키자는멸만흥한의 한족 중심의 민족주의가 화교, 유학생, 민족자본가의 반봉건주의와 연합해 손문이 주도하는 중국혁명동맹회로 모여 1911년 신해혁명이 성공하자  1912년 2월 12일 청나라의 멸망과 함께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 부의가 퇴위하면서 청나라도 멸망에 이르렀다.

부의는 1912년 12월 11일 아침 통치권을 포기하면서 모든 통치권을 베이징 정부 총리대신 위안스카이에 넘기라는 협박에 굴복해 모두 넘기면서 국체를 공화제로 변경한다고 선언했다. 진나라의 시황제가 황제로 올라선 이래 2천년동안 지속된 중국 왕조의 역사가 막을 내리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공화국이 탄생했다.

부의는 자금성에 머물며 빈민구제와 자선활동을 벌이며 시간을 보내다가 1924년 자금성을 빠져나와 일본 조계에서 지내다가 1934년 3월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황제로 즉위했으나 일본의 항복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려다가 1945년에는 소련의 하바롭스크 강제수용에 억류됐다.

1946년 전범 재판을 받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가 1950년에는  중국으로 송환돼 하얼빈의 정치범 수용소에 있다가 1960년 석방되었다. 저우언라이의 배려로 만주족을 대표하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다가 환됐다. 1967년 10월 17일 부의는 심장병과 신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