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정화의 대원정

윤의사 2024. 7. 11. 13:26

1405711, 명나라의 정화(鄭和)317척의 배를 이끌고 소주의 태창을 떠나 첫 원정에 나섰다.

정화의 원정은 1405년과 1433년 사이에 걸쳐 일어난 7번의 탐험 원정이었습니다.

정화의 원래 성씨는 마()씨이고, 이름은 삼보(三保)였다. 이슬람 상인 출신으로 포로가 되면서 황제에 오르기 전 주체(영락제)를 섬기면서 영락제가 성을 정()이라 내리니, ‘정화라 하였다. 환관의 최고직인 태감이 되었기에 사람들이 삼보태감이라고 부른다.

영락제가 함대의 건설을 명했고, 이 함대는 환관 정화의 지휘를 받아 남중국해,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의 해안까지 다녀

오는 성과를 올렸다. 서양의 대원정이 향신료인 후추를 얻기위함이라면, 정화의 대원정은 영락제의 뜻에 따라 중국인을 다른 지역에 많이 살게하고, 명나라를 중심으로 한 책봉조공무역을 실시하기 위함이었다. 또 다른 목적은 은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명나라는 토지세와 부역세를 합해서 징수하는 일조편법을 실시하였다. 일조편법은 일종의 은본위제로

많은 은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화의 원정시기에 은광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락제 이후 해외원정은 없었다. 왜냐하면 명나라는 당시 세계 1위의 경제대국으로 굳이 위험한 해외무역을 하면서까지 물품을 구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자급자족사회였으며, 은광을 발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원정에 사용된 함선들은 길이 137m, 폭 56m의 배 60여 척과 28천여 명의 선원으로 현대의 상황에서도 엄청난 크기와

인원에 중무장을 하고 있었고, 엄청난 양의 보물들을 싣고 있었다. 이 보물들은 중국의 부와 권력을 타 지방에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 강했는데 이 원정 동안 그들은 팔렘방 지역의 해적 함대를 소탕하고, 스리랑카의 알라케쉬바라 왕을 쫓아내고 새로운 왕을 세웠으며,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북부의 군사 세력들을 진압하였다. 정화의 원정대는 아프리카 동쪽의 말린다(케냐의 수도)까지 도달하였다. 말린디에서 조공으로 바친 동물이 바로 기린이었다. 중국에서 상상 속의 동물이었던 기린을 말린디에서 '게린(Gerin)'이라고 부르자 곧바로 기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락제는 기린을 조공한 말린디 사신을 극진히 대접했다고 한다.

영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