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핑퐁외교

윤의사 2024. 7. 9. 19:48

오늘날 지구상에서 패권 경쟁을 하는 두 개의 강대국을 꼽으면 미국과 중국으로 이를 G2라고 한다.

그런데 197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나타내지 못했으며,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공산국가가 된 이후 자유진영 국가와는 교류를 하지 않고 문을 걸어 잠근 죽의 장막이라 불리는 폐쇄정책을 이어왔다.

197146일에 개최된 나고야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끝나고 미국 선수단 15명과 기자 4명이 410일부터 417일까지 중국을 방문해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와 만나고, 중국의 주요 도시를 방문하였다. 이를 계기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이래 막혔던 미국과 중국 교류가 이루어졌다.

197179일 미국 외교관인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대통령보좌관인 헨리 키신저가 죽의 장막으로 가려진 중국을 방문했다. 그는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비밀특사 임무를 맡았으며, 그의 방중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조차 모르게 비밀리에 진행됐다. 중국에서는 마오쩌둥의 40년 지기이자 동지요 참모이자 22년간 총리로 2인자였던 저우언라이가 키신저를 중국 대표로 맞이했다. 헨리 키신저와 저우언라이는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의 대리인으로 냉전시대를 비웃듯 훈훈한 분위기에서 차담을 가졌다.

6·25전쟁에서 한반도 통일의 순간 백만대군을 북한에 보내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어가게 했고 남북분단의 길로 만들었으며, 많은 희생을 가져오게 했던 적대국 미국과 중국이었다. 그런데 키신저-저우언라이 회담을 계기로 1972221일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상하이 공동성명 발표를 통해 양국 간 국교 정상화 합의가 이뤄졌으며, 19791월 정식 수교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후 덩샤오핑에 의해 개혁·개방 정책을 과감히 추진한 중국은 지속적 경제성장으로 경제, 외교 역량을 키워나가 G2의 위치에 올라섰다.

키신저(좌)와 저우언라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