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김일성 사망

윤의사 2024. 7. 8. 19:47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김일성은 1994725일 남북 첫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일성은 회담 준비를 위하여 평안북도 영변 묘향산에 있는 별장에 머물다 199478일 새벽 2시경 심근경색으로

82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김일성 주석은 49년 동안 북한을 실질적으로 통치해 온 인물로, 그의 사망은 북한

내외에서 큰 충격이었다.

김일성의 사망 소식은 사망 후 34시간이 지난 199479일 오후 12시 평양방송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조선중앙TV"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인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가 1994

78일 새벽 2시에 급병으로 서거했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온 나라 전체 인민들에게 알린다"고 전했다.

김일성 사망 이후, 최고 권력은 김일성의 아들인 김정일(1941~2011)이 모두 세습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시기를 맞아 식량난과 에너지난 등과 계속된 자연재해가 겹치면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는 등 최악의 체제 위기를 맞았다.

이때 김대중 정부가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준 5억 달러로 핵개발과 자신들의 사치에 사용하면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11일장으로 진행된 장례식은 719일 이루어졌다. 방부 처리된 시신을 유리관에 넣어 평양 금수산궁전에 두었다.

이 비용이 100만 달러(13억 원), 연간 관리비용 80만 달러(10억 원), 30년간 관리 비용 2400만 달러(320억 원)가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의 식량으로 가지 않고 우상화에 사용된 것이다. 2011년 사망한 김정일도 김일성과 똑같이 방부 처리해 유리관으로 보관 중이니 처음 처리비 100만 달러(13억 원), 연간 관리비용 80만 달러(10억 원), 12년간 관리비용 960만 달러(130억 원)가 들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내재적 역사관에 의해 대한민국의 못난이들은 김일성에 대한 비난을 하지 않는다. 흔히 박정희는 3,000만 국민을 위해 3,000명을 못살게 했고, 김일성은 2,000명을 살리기 위해 2,000만을 못살게 했다고 말한다.(박정희의 정치를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1912년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난 김일성은 본명이 김성주로, 1931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45년 소련군과 함께 진주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초대 수상에 취임함으로써 북한의 최고 통치자의

지휘에 올라 49년 동안 일인 독재로 폭정을 일삼았다. 6.25 전쟁을 일으켜 300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 경제적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전쟁범죄자를 내재적 역사관이라는 허울로 비난은 커녕 오히려 옹호하는 집단도 있다.

전쟁 이후 김일성 일가가 보낸 간첩은 4,500명이고 미얀마 아웅산 폭파를 비롯한 북한의 테러와 도발을 3121회 하면서

많은 인명과 경제적 피해를 보았으며, 지금도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