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우리나라의 볼거리

연산군 유배지 강화도 교동읍성

윤의사 2024. 2. 3. 15:05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한양도성에서 가까우면서도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바다가 좁아 조류가 급하기에 접근이 어려운 섬이었다.

2014년 길이 2.11 km의  교동대교가 안공되면서 연륙도가 되어 편리하게 왕래할 수 있는 섬이 되었다.

단 민간인 통제구역이기 때문에 교동도 주민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해병대 검문소에서 출입증을 교부받고

교동대교 입구의 검문소에 그 출입증을 보여주어야만 다리를 건널 수 있고 야간(오후 8시~오전 6시)에는 통행할 수 없다.

지금은 편리한 곳인 교동도가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연산군을 비롯한 왕족들의 유배지였다.

조류가 급한 강화해협의 지리적 조건으로 외부인이 접근하기 어렵고(오죽하면 물을 두려워한 몽골이 침입했을 때  강화도로 천도했고, 병자호란 때에도 강화도로 피난갔을 정도였으니), 감시하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산군 뿐만 아니라 광해군을 비롯해 세종의 3남 안평대군, 선조의 첫째 서자 임해군  인조의 동생 능창대군, 인조의 5남 숭선군, 등이 이곳에서 유배됐었다고 한다.

교동도에는 약간의 흔적만 남은 교동읍성이 있다. 축성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정묘호란을 겪은 뒤 강화도의 방비를 위해 인조 7년(1629)에 남양부 화량에 있던 경기 수영을 교동으로 이설하면서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성의 둘레는 약 430m, 높이는 약 6m북쪽 3곳에 성문을 두었고각 문에는 망을 보기 위해 문루를 세웠는데동문은 통삼루남문은 유량루북문은 공북루라고 한다. 영조 29(1753) 성곽과 여장을 고쳐 쌓았고고종 21(1884)에는 남문을 다시 세웠다고 전한다

그러나 현재는 3문이 모두 남아있지 않는데, 남문인 유량루는 1921년 폭풍으로 무너져 석축 일부와 반원 형태의 홍예문이 남아 있다가 2018년 복원하였다. 1974년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행정구역의 개편에 따라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3호로 재지정되었다.

교동읍성과 가까운 곳에는 고려 인종 6 (1127우리나라에서 처음 세워졌다는 교동향교가 있다.

이곳에는 6.25전쟁 중 피난 온 황해도와 개성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오늘날 대룡시장은 피난민들이 먹고살기 위해 장사하던 애환과 추억이 있는 가게와 이발소 등이  60~70년대의 모습으로 남아있어 추억을 찾아 관광객들이 오고있다.

(사진:진성규 교수님)

연산군 유배지 유허비
복원 전 남문
복원된 남문
교동향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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