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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마개떡 인절미

윤의사 2023. 11. 5. 11:12

결혼식 때 상에 올리는 떡,

사돈댁에 이바지 음식으로 보내지는 떡.

바로 인절미이다.

유학 경전인 <주례(周禮)>에는 '가장 오래 전부터 먹어오던 떡이 인절미'라고 나와있다.

또한 '인절미는 찰지면서 쫀득하여 떡의 으뜸으로 여긴다.’라고 나와있다.

인절미는 “인병(引餠)”이라고도 불리며,

그 종류로는 대추인절미, 깨인절미, 쑥인절미, 차조인절미, 동부인절미 같은 것들이 있고,

인절미 재료가 지방에 따라 달라지면서 독특한 인절미가 나와

각색차조인절미, 감인절미, 혼인인절미 등이 있다.

혼인인절미로 유명한 황해도 연백인데 이곳에서 생산되는 기름지고 찰진 찹쌀로 만들어

결혼식 때나 이바지 음식으로 준비하였기 때문이다.

친정나들이 온 딸이 시댁으로 돌아갈 때는 '입마개떡'이라 하여 크게 만든 인절미를 보냈다.

시댁에서 입을 봉하고 살라는 뜻이다.

결혼식에 인절미를 올리는 것은 찰기 진 인절미처럼 부부가 잘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농서인 <증보산림경제>를 보면 '찹쌀을 뜨거운 물에 담가 4-5일 후 시루에 찐 다음

목판에 쳐서 한자 정도로 썰어 콩가루를 입혀 굳으면 칼로 썰어서 꿀을 발라 먹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규합총서>에는 '쌀씻기를 옥탕이 씻고 대추를 가늘게 썰어 떡에 넣어 볶은 팥 묻혀 굳으면 좋다'

라고 소개해, 인절미를 만들 때 대추나 팥도 함께 넣어 만들었음을 알수 있다.

인절미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인조 2년(1624)에 인조반정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이괄이었다.
이괄을 무서워 하던 서인들은 이괄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무고를 하였다.
이에 이괄은 반란을 도모하였다. 이괄이 한양까지 함락시킬 정도로 기세좋게 나가자, 인조는 겁을 먹고

수원과 천안을 거쳐 공주에 머물렀다. 공주에 머무르고 있을 때 저녁에 농민이 떡을 해서 가지고 왔다.
인조는 배고푸던 차에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인조는 말했다.
“아~ 절미(絶味)로다! 절미야!”
떡을 먹고 난 인조가 물었다.
“이 떡 이름이 무엇인가?”
이에 농민은 당황하였다.
떡을 부르는 이름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르옵니다. 그냥 떡이라 부르옵니다.”
인조가 물었다.
“그대 성이 무엇인가?”
“인가이옵니다.”
“그래? 인가라.....
그럼 앞으로 이 떡을 '인절미'라고 하거라.“
그래서 인절미가 되었다고 한다.

인절미를 만들 때 쓰는 떡메와 떡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