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오늘은 여성 의병장 윤희순 탄생

윤의사 2022. 8. 11. 20:31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없이 무슨 소용이냐?”

여성의병장 윤희순이 지은 <안사람 의병가>의 요지였다.

나라를 빼앗길 때 여자들도 나서야 한다는 말이다.

윤희순은 무려 8편이나 되는 의병가를 지어, 충의지사(忠義之士)의 의기를 노래하였다.

그는 <경고문>도 4편을 썼다.

윤희순은 철종 11년(1860) 8월 11일에 양주군 구지현(현재 구리시)에서 윤익상과 덕수 장씨의 장녀로 태어났다.

16세 되던 1876년 춘천의병장인 유홍석의 장남이며 의병장 유인석의 조카인 유제원과 혼인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을미개혁의 단발령으로 을미의병이 일어나자 '안사람 의병가'를 지어 

여성도 구국운동의 중심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였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으로 정미의병이 일어날 때는 76명의 여성들에게서 군자금 355냥을 모았다.

이돈으로 놋쇠와 구리를 구입해, 그것으로 탄환을 만드는 탄약제조소를 운영하여 의병운동을 지원하였다.

또한 30여 명의 여성 의병을 모아 의병운동을 뒷바라지 하였다.

경술국치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시아버지 유홍석과 남편 유제원을 따라 1911년에 윤희순도 세 아들을 데리고

만주 땅으로 떠났다.

만주 환인현에서 무논을 개발하여 벼농사를 지으며 군자금을 모아 항일운동에 힘을 보탰다.

1912년 윤희순은 노학당이란 교육기관을 세워 김경도와 박종수 등 50여 명의 독립립운동가를 길러냈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윤희순은 가족과 함께 무순으로 이주했다.

무순 포가둔에서 독립운동가와 함께 대한독립단을 만들었고, 1926년에는 대한독립단 가족부대와

대한독립단학교도 세웠다.

대한독립단은 조선독립단이라고도 하며 윤희순 일가와 유인석 아래에서 의병운동을 하던 사람,

그리고 황해도 출신의 의병장 조맹선과 박장호와 평안도의 조병준과 전덕원이 거느린 의병들로 구성되어

약 600명의 의병들이 모였다.

이 단체를 윤희순의 큰아들 유돈상이 이끌었으며, 일부 중국인들의 후원을 받아 독립군을 양성하는 학교를 세웠다. 

1928년 유돈상이 군자금을 모금하여 흩어진 독립군부대의 재건을 위해 힘쓰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고문으로 1935년

순국했다. 윤희순도 일제의 탄압과 감시 속에서 무순, 봉성현 석성,혜성현 모관둔 등지로 옮기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장남의 순국에 충격을 받고 12일 후인 1935년 8월 1일 순국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안사람 의병가

 

아무리 왜놈들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쳐지면 왜놈 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사랑 모를소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 없이 소용 있나

우리도 의병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

금수에게 붙잡히면 왜놈 시정 받들소냐

우리 의병 도와주세

우리나라 성공하면 우리나라 만세로다

우리 안사람 만만세로다

 

윤희순의 <의병가사집>
윤희순의 의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