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6월 10일 오늘의 역사, 6.10독립만세운동

윤의사 2022. 6. 10. 19:49

1926610일은 조선시대 마지막 임금인 순종의 인산일(因山日)이다.

보통 임금의 장례식에는 장의 행렬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심지어 지방에 있는 기생들도 장의 행렬을 따라 장사를 하기 위해 왔으니...

이에 맞춰 대규모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1926년은 병인년(丙寅年)이기에 '병인 만세사건'이라고도 부른다.

6.10독립만세운동은 세 부류에 의해 주도되었다.

한 부류는 사회주의자인 권오설과 김단야, 그리고 인쇄노동자인 민창식과 이용재 중심의 세력, 

또 한 부류는 이병립을 중심으로 한 연희전문학생과 이천진을 중심으로 한 경서엦국대학생들,

다른 한 부류는 중앙학교와 중동학교 등 학생들이 중심이 된 부류였다.

일본은 순종이 승하하자 3.1운동이 교과서가 되어 서울에 육해군 병력 7,000명을 대기시키고

부산과 인천에는 군함을 정박하는 등 경계를 강화하였다.

순종의 인산일에 참가한 학생들은 시간차를 두고 전국에서 일어났으며,

시위와 동맹휴학으로 이어졌다.

6.10독립만세운동이 3.1운동과 차이점은 반일독립운동과 함께 토지제도 개혁, 8시간 노동제 채택 등 

농민과 노동자의 요구 사항이 반영된 점이다.

6.10만세운동은 3.1운동이후 잠자던 독립에 대한 열망을 나타냈지만,

조직 약화와 일경의 예비 검속에 의해 실패했다.

하지만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의 좌우합작 독립운동단체인 신간회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신간회는 3년 후에 광주학생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중앙고 교정에 있는 6.10만세운동 기념비, 중앙고보 이선호 학생은 일본의 법정에서 당당히 "자유를 절규하면 자유가 생긴다는 결심으로 거사에 임하였다"라고 진술했다.

61년 뒤 대한민국에서는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4.13호헌조치,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대통령 직선제의 강한 열망으로 6월 10일 전국에서 국민들의 평화적 시위가 시작되었다.

노태우는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발표했으며,

같은 해 12월 16일 직선제에 의한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61년의 시차를 두고 독립과 민주화를 위한 시위가 이루어졌으니,

전자는 독립에 대한 의지를 강화하였고 후자는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정착되면서 사회운동 성장판의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