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과 박물관/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매헌윤봉길의사 상하이의거 90주년, 북한의 폄훼한 평가

윤의사 2022. 5. 1. 10:49

매헌윤봉길의사의 상하이 의거에 대한 북한 평가는 굉장히 편협한 편이다.

즉 1932년 <콤뮤니스트>에 발표됐던 김단아의 논지는

'조선=한민족을 식민 지배하는 일제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폭탄을 던져 그 앞잡이들을 처단한 것은 

잘한 행동이었으나, 그 '개인적 테러'로는 민족의 해방을 실현할 수 없었고

오히려 일제의 탄압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고 쓰고 있다.

 

먼저 '테러'란 표현을 쓰고 있다.

<국방과학기술용어사전>에는 '테러'를 '주권 국가 또는 특정 단체가 정치, 사회, 종교, 민족주의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폭력을 사용하거나 폭력의 사용을 협박함으로써 특정 개인, 단체,

공동체 사회, 그리고 정부의 인식 변화와 정책의 변화를 유도하는 상징적, 심리적 폭력 행위의 총칭'이라고 나와 있다.

 

매헌윤봉길의사가 특정단체인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것은 상하이 의거 3일 전 가입하였다. 

비록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한 행동이었지만, 윤의사는 오직 침략을 주도한 주구들을 향해 폭탄을 투척하였을 뿐

일본인 누구도 희생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북한의 '테러'라는 말은 일본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일제의 탄압을 가중시켰다'고 하지만, 윤의사의 의거로 오히려 일제 수뇌부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하였다. 또한 중국 장개석 정부와 해외 동포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유명무실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어 항일투쟁이 확대되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출판된 <조선전사> 제17권에서는

'김일성이 제시한 주체사상에 따라 집단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할 때에만 민족해방운동은 새로운 발전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는 논리를 제시하면서 1931년 12월-1933년 봄의 항일독립운동을 503쪽을 다루는데 매헌윤봉길의사와 상하이의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김일성 중심, 김일성 일가 우월주의의 일방적 해석 중심의 역사 이외에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2002년에 출판된 <조선력사인명사전>에서는 

'김구의 한인애국단 입단 사실과, 상하이의거가 중국인들과 중국국민당 수뇌들의 창찬을 받았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독자는 북한 국민들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책이기에 김일성 중심의 역사라는 것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함이라고 추정된다.

이러한 사실은 2015년 12월 10일의 <조선신보>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전민항쟁으로써만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 수 있다는 김일성 주석의 조국해방 노선과 업적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논증했다.'

라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북한에서는 김일성 일가와 관련되어야만 독립운동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윤의사와 비슷한 안중근의사, 강우규의사, 이봉창의사의 거사를 '의거'라고 표현하지 않고 '의사'라는 표현도 쓰지 않고 있다.

(참고:김학준 매헌연구원장<매헌윤봉길의사평전>)

매헌윤봉길의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