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오늘은 일본 전범 도조 히데키가 처형된 날

윤의사 2021. 12. 23. 09:46

도조 히데키는 1884년 7월 30일 도쿄 부 고지마치에서 육군중장 도조 히데노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육군유년학교와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임관하였다.

그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36년 황도파가 주도한 쿠테타가 실패한 이후 만주관동군사령관이 되면서부터이다.

쿠테타를 일으켰던 황도파 장교들을 체포하고 만주의 치안을 확보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1937년 루거우차오 사건이 일어나자 무력으로 철저하게 진압하고, 

이어진 중일전쟁에서는 관동군 참모장으로 직접 지휘를 하여 공을 세웠다.

1940년 육군대신이 된 도조는 독일, 이탈리아와 군사 동맹을 맺어 제2차 세계대전의 주축국을 형성하는

삼국동맹 조약을 맺었다. 1941년 7월 프랑스령인 인도차이나 남부를 일본군이 점령하자, 미국은 인도차이나에서 일본군의 철수를 요구했으나 도조는 반대했다. 이에 미국은 석유 등을 일본에 수출을 금지하고, 재미 일본 자산을 동결시켰다.

미국과의 전쟁에 반대하던 고노 수상이 사퇴하자, 도조가 후임 수상이 되면서 태평양 전쟁의 전조가 나타났다.

도조는 '제국의 자존과 자위를 위해 대미 전쟁을 한다'라고 선언하는 한편, 미국에는 자산동결 해제, 대일수출금지조치 해제 등을 요구했다. 미국이 중국과 인도차이나에서 일본군의 전면 철수를 요구하자, 도조는 미국과의 전쟁 절차에 돌입하였다.

12월 1일에 어전회의에서 미국, 영국 등과 전쟁을 결정한 도조는 12월 7일 아침, 일본제국 해군이 하와이 오아후 섬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이로써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으며 미국은 일본, 독일, 이탈리아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고 4년 8개월 동안 참전하였다. 일본은 진주만 공습에 이어 싱가포르를 점령하고 영국의 전함을 격침하는 등 승리를 이어가면서 도조는 전선을 넓혔으나, 공군 전력의 열세로 일본은 패배하였다.

전쟁과 함께 3년간 이어진 도조 내각은 도쿄의 대공습과 미국의 오키나와 점령으로 수세에 몰리며 1945년 7월18일에 사퇴했다. 군국주의를 이끌며 전쟁의 도가니로 만든 도조는 일본의 항복 후 권총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하고,

'전쟁을 일으켰고, 미국 등의 영토를 침략했으며 전쟁 포로 등을 학대, 처형했다는 죄목으로 극동 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자로 선고되면서 도쿄의 스가모 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져 64년의 독재와 침략의 생을 마감했다.

화장된 후 태평양에 뿌려졌으나 1978년 야스쿠니 신사에 도조를 비롯한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살고 있어

일본 정치인들이 갈 때마다 외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사진 출처:알탄하우스)

극동군사재판을 받기위해 호송되는 일본 군국주의의 A급 전범들
도조 히데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