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근,현대사 영웅만들기

녹두장군

윤의사 2021. 1. 9. 10:12

넓은 들판 에 2채의 초가집이 보인다.

이평면 장내리 조소마을의 녹두장군 생가는 세 칸 짜리 낡은 초가집으로 방, 부엌, 건넌방과

마당 한쪽에 있는 창고가 있는 허름한 집이다.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오는 듯 하였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꽃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녹두장군집을 둘러보며 장군의 불의와 싸우는 꿋꿋한 정신을 되새기며,

생가 이외에 깊은 감동을 줄만한 자료가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녹두장군집을 떠나 황토현으로 갔다.

황토현은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싸워 승리를 거둬 사기를 크게 높인 싸움터이다.

농기구와 대나무창으로 무장한 농민군에 비하여  

정규군 800명과 보부상 부대 1300명으로 구성된 관군은 총과 대포 등 신식 무기를 갖춘 부대였다.

그러므로 동학군과 관군의 대결은 동학군의 입장에서는 '계란 바위치기'로 싸움은 보나마나였다.

그러나 녹두장군은 1894년 4월 6일 밤 관군을 이곳 황토현으로 유인한 후에

이튿날 새벽까지 치열하게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이제 동학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릇 듯 하였다.

이 기세를 몰아 전라도 감영이 있는 전주까지 점령하였다.

이곳에는 동학농민군의 승리를 기념하여 1963년에 '황토현기념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1983년에는 황토현 전적기념관이 세워졌다.

이곳에는 전봉준 장군의 초상화가 있다.

지배층의 모습을 지닌 초상이기에 불만스럽지만

날카로운 눈매만은 부정한 관리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의가 보였다.

조각에서 보여지는 모습의 농민도 살이 통통하게 찐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당시 농민들은 탐관오리의 수탈로 너무나 깡마르고 힘든 모습이었을 것이다.

후손들에게 정확한 역사와 유적을 남기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가 아닐까 한다.

녹두장군 생가

 

황토현전적지에 있는 녹두장군 동상
녹두장군 초상화
황토현 유적지의 동학군

황토현전적지 기념비

-황토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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