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문화사전/우리역사문화사전

전기수

윤의사 2020. 4. 4. 11:17

어릴 적에 할머니나 어머니의 무릎에 누워 옛날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생생하다. 이야기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배층의 관료, 거기에 붙어 사는 친족이나 비장(裨將), 비복(妃僕), 관아의 소인배, 호협적인 한량이나 건달패, 농촌에서 흘러들어온 빈민, 각양 각색의 장사꾼이나 수공업자 등 많은 인물들이 독자적으로, 또는 서로 관련을 맺으면서 주인공이 되어 엮어 나가는 이야기들이다.

어머니나 할머니 세대는 이런 이야기를 직접 책으로 보기도 했지만, 전국을 돌아다니며 청중들에게 이야기를 엮어 내던 이야기꾼들에게도 들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이희준(李羲準)이 민담 야설을 수집해서 기록한 『계서야담(溪西野談)』과 같은 문헌이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많은 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당시에는 글을 모르던 문맹이 많았거니와 책의 출판도 활발하지 못했으므로 이야기꾼은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더욱이 조선 후기에는 한글 소설이 많이 등장했으므로 이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이야기꾼에는 청중에게 소설을 낭독해 주던 강독사(講讀師), 이야기를 노래로 구연하던 강창사(講唱師),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어 내던 강담사(講談師)가 있었다. 이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했거나 들었던 일들을 시장, 약국, 객점과 같은 시정 주변 또는 대갓집이나 부잣집 사랑방에서 재미나게 이야기해 주고 그것을 대가로 살아가던 일종의 예술인으로 전기수(傳奇叟)라고도 하였다. 이야기꾼에 대한 일화가 몇몇 문헌에 나오고 있으니, 조선시대 고종때의 학자인 유재건(劉在建:1793~1880)이 지은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는 ‘정조 때 김중진이라는 이는 늙기도 전에 이빨이 죄다 빠져서 사람들이 놀리느라 별명을 오이물음이라 붙여 주었다. 익살과 이야기를 잘 하여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 세상 물정을 표현함에 있어 간절하고 정성스러우며 섬세하게 전해주었다. 더러 들어 볼만한 이야기가 많았다’고 언급하고 있으며, 영정조 때 문학가인 조수삼(趙秀三)의, 『추재집(秋齋集)』에 ‘이야기 주머니(說囊) 김 옹은 이야기를 아주 잘 하여 듣는 사람들은 누구 없이 포복절도했다. 그가 이야기의 실마리를 잡아 살을 붙이고 양념을 치며 착착 자유 자재로 끌고 가는 재간은 참으로 귀신이 돕는 듯했다. 가위 익살의 제 1인자라 할 것이다. 그리고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세상을 조롱하고 깨우치는 뜻이 담겼음을 알게 된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이야기꾼들이 많이 등장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이야기꾼들이 하던 이야기를 한문으로 기록한 것이 야담이다. 즉, 조선 후기에 떠돌아다니던 다채로운 삶에 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한문으로 기록한 짦은 형식의 작품이 바로 야담이고, 대표적인 야담집으로는 『청구야담(靑邱野談)』, 『계서야담』, 『동야휘집(東野彙輯)』이 있다. 이야기꾼들은 대체로 신분적으로 중간층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양반 등 지배층과 농민을 비롯한 피지배층의 생활을 다양하게 경험하여 진실되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가정의 구조가 핵가족화되고 맞벌이부부가 늘어나면서 어머니나 할머니가 들려 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을 겨를이 없다 보니 아이들의 성격이 건조하면서도 순박함이 떨어지는 듯하다. 요사이 동화를 전문적으로 구연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머니를 비롯한 어른들이 직접 들려 주는 생생한 이야기가 우리 어린이에게 필요하리라 본다.

추재집(서울역사박물관)

심청전(서울역사박물관)

홍길동전(오죽헌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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