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선생님/이재운선생님의 칼럼

[스크랩] 산티아고의 길에 열광하는 한국인들, 김대건 안드레아의 길은 알지도 못해

윤의사 2019. 1. 3. 14:19

'산티아고의 길'은, 유럽 사람 빼고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기독교 성지란다.

산티아고의 길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분인 야곱이 예루살렘에서 순교당한 뒤 돌배를 타고 스페인 북부에 이른 다음 지금의 산티아고에 시신이 묻혔다 하여 생긴 길이다.


하여튼 좋다. 나는 붓다의 길을 가는 사람이니 기독교 문화를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내가 터를 잡고 사는 용인의 기독교 역사는 잘 안다.

시장마다 감옥에 가는 전통이 있는 용인시는 주옥같은 문화예술 아이템이 즐비하지만, 막상 이들은 개발 밖에 모르고, 양아치들과 더불어 오직 형님 동생 어깨동무하며 시절 보내다 나중에 감옥으로 가곤 했다.


용인은, 당진에서 온가족이 몰살당하는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온 일곱살 어린아이 김대건을 키운 땅이다. 천주교인들이 해미읍에서 마구 죽어나가던 해, 부리나케 서울로 달아났다가 더 숨기 좋은 땅을 찾던 이 모자는, 오늘의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로 숨어들었다. 이미 숨어 사는 천주교인들과 연이 닿아 이 모자는 한덕골에 몰래 들어와 살며, 다른 이들과 어울려 옹기를 구우며 생계를 이었다.

그러던 중 산너머 골배마실과 은이골로 이사하여 더 많은 천주교인들과 옹기를 굽다가, 김대건이 15세 나던 해 유학생으로 뽑혀 마카오로 들어가고,거기서 우수한 성적으로 신부가 되어 돌아왔다.

그는 신부가 되어 돌아온 용인땅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조정에 잡혀갔는데, 우리 조정은 김대건의 박식한 서양 지식에 놀라 천주교를 버리고 나라를 위해 일할 것을 설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양심에 따라 순교를 택한 그는 새남터에서 사형당한 뒤 시신이 한강 모래밭에 묻혔다.


그때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학일리 고초골 사람 이민식이 그의 시신을 몰래 캐어 용인으로 모셔오고, 

은이골에서 사암리, 운학리, 고초골, 묵리, 미리내로 이어지는 자신의 산기슭에 묻었다고 한다.

나는 천주교인들을 만나면 이 사실을 즐겨 들려주는데, 막상 자세히 아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수원교구에 연락해보려고도 했지만 이들은 행정구역이 안성일 뿐이고, 실제로 용인 사람 김대건이 묻히고, 

용인 사람 이민식의 땅인 그곳을 개발할 뿐 어린아이 김대건이 자라고 전도하고 죽어서 돌아온 용인 땅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참담한 마음 금할 수 없지만, 언제고 뜻있고 양심있는 세력이 생겨나 용인의 문화와 역사를 되새기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지금은, 용인 정치 집단의 무지와 무능과 욕망에 진저리가 난다.



- 김대건 안드레아 길의 중간쯤 되는 운학동-사암리 고갯길에서 내려다본 미륵뜰.

이 능선 좌우 골짜기마다 천주교인들이 옹기를 굽던 가마터가 대단히 많다.


<배론 성지에서 스물다섯 살 청년 김대건을 그리워하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김대건 신부와 존 로스 목사에 감사한다>


출처 : 알탄하우스
글쓴이 : 태이자 이재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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