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우리나라의 볼거리

관도대전

윤의사 2018. 12. 16. 17:15


관도전투를 레고로 만들었다.


삼국지의 관도전투를 재구성하였봅니다.


명목만 후한이며, 황제인 허수아비 국가, 각지에서는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 중 조조와 원소가 가장 큰 세력이었다.

조조와 원소는 가장 친한 친구 사이였으나, 한 나라에 두 마리의 용은 존재할 수 없는 법.

조조는 여포와 원술을 물리치고, 하남에서 강소성 장강 이북지역을 차지했다.

원소는 한복, 공손찬, 장연, 공융 등의 군벌울 물리치고 청(), (), (), ()4(현재의 하북, 산서, 산동)를 지배하여 조조보다 세력이 컸다.

처음에는 원소의 지원으로 조조는 세력을 유지하며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으나, 조조가 혼자서 헌제를 즉위시키며 원소와 대립하게 되었다. 이 틈을 타서 유비가 원소와 손을 잡고 199년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조조에게 패하면서, 유비는 원소에게 관우는 조조에게 각각 포로로 잡혔다.

조조는 참모들의 조언을 잘 들으면서 군사들을 이끌어나갔다. 하지만 원소는 다른 참모들의 조언을 무시하면서 군사들은 훈련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원소는 조조가 헌제를 옹립한 것은 잘못이라고 하면서 10만의 대군으로 전쟁에 나섰다. 원소의 참모인 전풍은 조조는 유비를 이겼기에 조조의 본거지이자 헌제의 거주지인 허()는 비워있지 않습니다. 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끄는 것이 좋습니다. 본거지를 지키면서 조조의 뒤쪽을 공격하여 혼란에 빠뜨린다면 3년 안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으나, 원소는 이를 받아들이지않았다. 그리고 원소는 오히려 전풍을 투옥시켰다.

다음해 2. 원소는 안량을 백마(白馬 : 현재 황하 남쪽 강변)에 보내 조조군의 동군 태수 유연을 공격하게 했다. 그러자 원소의 참모인 저수가 안량의 파견을 반대했으나 원소는 이를 듣지 않았다.

조조에게는 책사 순유가 있었다. 순유의 조언에 따라 조조는 관우를 장수로 안량을 공격해 물리치고 안량을 베고 수급하면서 백마의 포위를 풀면서 백마의 군대와 백성들을 모아 철수시켰다. 철수하는 조조를 원소는 문추를 시켜 추격하게 하다가, 순유가 수송대로 하여금 대열을 좌우로 갈라 놓은 뒤 서황 등이 습격해 문추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

조조는 관도로 물러나 숨고르기를 하였다. 원소군의 저수가 우리 군은 숫자에 비하여 조조군에 비해 용맹함이 떨어집니다. 다만 군량미가 우리가 풍족하니 전쟁을 장기적으로 이끌어야 합니다.”라고 조언했으나, 원소는 이를 듣지 않았다. 원소는 곽도, 순우경 등과 관도까지 진격하였다.

원소는 70만 대군을 90리에 걸쳐 진을 구축하고 서서히 전진하는 전술로 조조의 진영을 압박했다. 이에 비해 조조는 7만의 군사로 진영을 구축하며 전진해 이에 맞섰다.

원소는 지하도를 파서 공격하거나 토산을 쌓아 조조를 몰아붙였다. 조조는 이에 맞서 지하도에 물을 끌어들여 지하도로 공격해오던 원소군을 물리쳤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치는 것은 조조군이기에 전황이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이에 조조가 순유에게 계책을 물었다.

원소군이 70만이건 7백만 이건 걱정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들은 머릿수만 70만이지 정작 목숨을 내놓고 싸울 군사는 삼 사만에 불과합니다. 그에 비해 우리의 7만 군사는 정예병입니다. 전투 경험도 풍부하니 단기전으로 나가면 우리가 승리할 것입니다.”

원소군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바로 70만 명이 먹을 식량이었다. 조조는 순유의 진언에 따라 서황과 사환에게 명령해 원소군의 식량 수송대를 공격해 수천대의 곡물수송차를 불태웠다.

원소는 마음이 급했다. 오소에 있는 식량과 군수품을 관도로 이동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원소의 참모였던 허유가 조조에게 귀순해와 이곳을 지키는 장수는 순우경이며, 술고래인 순우경은 방비가 허술하다.”는 정보를 알려왔다.

이에 조조는 장료와 허저를 선봉으로, 서황과 우금을 후진으로 삼고 마른풀과 장작으로 무장시킨 군사 5천을 이끌고 기습해 순우경을 생포하자 군사들은 항복하거나 도망쳤다. 조조는 순우경을 사지를 절단하고 귀와 코까지 잘린 다음에 원소에게 보내졌다.

오소가 조조에 함락되었다는 소식에 원소군은 서로를 비난하며 주축 장수인 곽도와 장합이 분열이 되었다. 곽도는 원소에게 장합의 배신을 주장하였다. 귀가 엷은 원소가 장합을 죽이려고 하자 장합은 배신하여 원소를 공격하고 조조에게 귀순했다. 갑작스런 장합의 공격에 원소는 800명의 기병만을 이끌고 도망쳤으며, 다른 원소군은 모두 흩어지게 되면서 무너졌다.

패배한 원소는 자신을 따르는 군사들을 정돈하여 재기를 노렸다. 2025, 관도에서 패배한 후유증으로 원소는 병이 들어 피를 토하며 죽었다. 원소의 아들 원상이 뒤를 이었으나 원담, 원희 등 형제 간의 불화로 원소의 세력은 내전이 일어났다. 이에 조조는 원담과 연합군으로 원상을 공격해 멸망시켰다. 조조는 2051월에 홀로 된 원담을 공격해 죽이고 기주를 평정했다. 이제 중원에서 조조는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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