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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 혼인동맹의 의미

윤의사 2018. 8. 20. 16:28

우리가 국사를 배우면서 왜곡된 것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고려와 원나라의 혼인동맹입니다.

중국에서 몽골몽고(蒙古)’라고 부르는 것은

우매한 민족이라는 뜻으로 몽골을 비하하기 위함입니다.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에서도

몽골에 대한 비하의식이 작용하면서

원나라와 맺은 혼인동맹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원나라는 고려와 약 30여 년 간 싸웠습니다.

기마병이 주축인 몽골은 자신들에게 반기를 드는 민족은

무자비하게 복수를 합니다.

그럼에도 고려만큼 끈질기게 저항했던 민족이나 나라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원나라는 그런 고려를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하여 우대하였습니다.

고려가 원나라와 혼인동맹을 맺은 것은 고도의 외교 전술입니다.

 

첫째는 고려 세자는 일정 기간 원나라에서 황제와 함께 하였습니다. 그리고 원나라 공주를 배필감으로 찾아 혼인을 하였습니다. 그럼으로써 원나라 황실의 구성원이 되어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무인정권으로부터 왕권의 안정을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둘째는 원나라 공주 출신 왕비와 혼인을 하는 것은 원나라 최고부족회의인 쿠릴라이에 참석을 할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대개 고려 국왕과 혼인한 원나라 공주는 원나라의 6단계 종친 중 1단계와 이루어졌기에 쿠릴라이에 참여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는 곧 고려 국왕이 원나라의 내정에 참여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고려 국왕이 충선왕입니다. 내정에 참여한다고 하는 것은 원나라로부터 많은 보상과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고려 내정을 간섭하던 다루가치의 간섭마저 막을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원나라의 사신이 고려에 왔을 때 전에는 상석에 앉았지만, 이제는 고려 국왕이 상석을 차지하게 됩니다.

셋째로 원나라 황제보다 항렬이 높은 고려 국왕이 생겨 원나라에서 오히려 고려 국왕을 어려워하는 일도 생겨났습니다. 충렬왕은 39세에 16세의 쿠빌라이(원세조)의 막내공주인 원성공주(제국대장공주)와 혼인을 합니다. 그런데 세조가 세상을 떠난 후 황제에 오른 원나라 성종은 세조의 손자였으므로 왕비는 황제의 고모가, 충렬왕은 고모부가 되었습니다.

왕권의 안정과 원나라에 대한 내정 관여, 그리고 경제적 이익을 도모했던 혼인동맹은 기황후가 등장함으로써 단지 고려 내정간섭과 기철을 비롯한 기씨 일당의 힘을 키워주기 위함이라 본래의 혼인동맹의 의미를 잃게 된 것입니다.



대만 고궁박물관에 있는 기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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