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제주도

하멜

윤의사 2017. 12. 4. 20:17

월드컵국가대표감독인 히딩크 때문에 네덜란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서양에 처음 소개된 것도 네덜란드 사람들에 의해서이다.

그러므로 네덜란드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꽤나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제17대 효종 4(1653) 1월에 네덜란드배 스페르베르 호가 네덜란드를 출발하여, 같은 해 6월 바타비아, 7월 타이완에 이르고, 거기서 다시 일본의 나가사키로 항해하던 중 폭풍우에 밀려 815일 제주도 부근에서 난파당했다. 선원 64명 중 28명은 익사하고, 하멜 이하 36명이 제주도에 표착하여 관원에게 체포되었는데, 하멜을 제외한 35명은 전혀 배우지 못한 하류층 선원이었다. 이들은 앞서 표류하여 조선에 거주하고 있던 벨테브레(한국명:박연)의 지휘 아래 훈련도감의 포수로 임명되었으나,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워 배에 있던 사슴 가죽을 환급받아 이것으로 오두막과 의복 등을 마련했다고 한다. 현종 6(1665)에 이들은 청나라 사신의 행렬에 뛰어들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구원을 호소했으나 실패했으며, 이 일로 하멜 일행은 서울에서 추방되어 전라도 병영으로 이속(移屬)되었다. 지방에서의 생활은 더욱 어려웠다. 때로는 군사 훈련을 받기도 하고, 풀뽑기 같은 막일을 하며 지냈고, 흉년에는 구걸을 하거나 승려들의 도움을 받아 살기도 했다. 그 뒤 일행이 나뉘어 조선 전국을 유랑했다.

조선 사람들에게 벽안(碧顔)의 서양 사람들은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조소와 감시 속에서 고향이 그리워 미칠 지경이었던 하멜은 마침내 결단을 내려 생사를 건 탈출을 시도하게 되었다. 현종 7(1666) 95일 하멜 이하 8인은 우여곡절 끝에 엄중한 감시를 뚫고 가까스로 작은 배를 이용하여 조선을 탈출했다. 그리고 나가사키에 도착하여 고국 사람들과 재회의 기쁨을 맛보니 1328일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였다. 하멜은 귀국 후 하멜 표류기를 저술하여 그 동안의 사정을 기록한 기행문을 남겼다.

하멜표류기는 우리나라의 지리, 풍토, 산물, 경치, 군사, 법속(法俗), 교육, 무역 등에 관하여 실제로 저자가 보고들은 바를 기록한 것으로 당시 조선의 사정을 적은 귀중한 자료로서, 한국을 서방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이다.

하멜이 처음 표류한 용머리 해안에 하멜기념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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