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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윤의사 2017. 11. 7. 20:10

러시아 혁명 전의 사회는 농업 중심의 국가였다. 비록 국가 주도의 산업 혁명이 일어났어도 오히려 부작용이 더 많았다. 농민들이 소유한 농토는 아주 적거나 대부분 소작인이었다.

산업 혁명 후의 공장 노동자들도 하루 1516시간의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저임금 국가였다. 이에 비해 황제와 귀족들의 생활은 사치스러웠고, 농민이나 노동자들이 불만을 말하면 황제에 대한 반역으로 언제 생명이 달아날지 알 수 없었다. 이때 레닌을 비롯한 지식인을 중심으로 사회주의가 들어와 사회주의 정당이 생겨났다.

190519일 일요일,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며 대규모 파업을 하였다. 이를 지켜본 러시아 신부 가풍과 많은 군중들이 합세해 평화적인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시위 행렬에 마구 총을 쏘아대서 5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것이 피의 일요일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귀족들의 수탈에 못이기던 농민들이 합세하고 군대에서까지 폭동이 일어나 러시아 전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결국 황제가 두마(의회) 개설 등 개혁을 약속했으나 오히려 전제 정치의 강화를 꾀하였다.

1914년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암살하는 사라예보 사건이 터지자, 범슬라브주의를 내세워 러시아 황제인 니콜라이 2세는 곧바로 전쟁에 참전하였다. 발칸 반도에서 영토를 새로 얻어 민중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군수 물자를 생산하느라 생활필수품 생산이 줄어들고, 생활필수품이 부족해지자 물가가 마구 올랐다. 러시아에는 굶어 죽고 얼어 죽는 국민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결국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19173월에 혁명이 일어났다. 식량 배급전쟁 중지전제 정치 타도를 요구하였다. 황제는 페트로그라드에 수비대를 보냈지만 군인들은 오히려 노동자의 편을 들었다. 혁명은 금세 전국으로 퍼져 전선에 나간 군대도 노동자의 편에 서게 되었어요. 노동자농민 소비에트(대표자 회의)가 조직되어 자신들의 뜻을 주장했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진 니콜라이 2세는 자리에서 물러났고, 혁명은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그리고 케렌스키가 이끄는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 정부가 수립되자 러시아 국민들은 전쟁도 끝나고, 노동자는 8시간만 일하며, 농민은 땅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시정부는 민중의 요구를 계속 무시하였다. 오히려 임시정부의 개혁은 실패하여 국민들의 생활은 더 어려워졌고, 끝낸다던 제1차 세계대전은 계속되었다. 연합국의 재정 지원을 받았으므로 연합국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독일과 계속 전쟁을 벌여야만 했다. 이러한 현실에 레닌은 정면으로 도전하여 전쟁을 획책하는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당장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하자고 주장하였다. 레닌의 주장에 볼셰비키는 규모가 커지자, 자신감을 얻은 레닌은 빵과, 평화와, 자유를 부르짖었다. 이처럼 볼셰비키의 영향력이 커가는 것을 두려워한 임시정부는 탄압을 가하였다. 그러나 독일 공격 실패로 반정부의 열기가 높아져 농민 출신의 병사들이 탈영을 하여 무장 시위 운동을 했으나 진압하였다. 러시아가 혼란한 틈을 타 레닌은 조직을 재정비하였다. 전쟁의 지속으로 러시아 민중의 형편은 2월 혁명 이전보다 더욱 악화되었다. 레닌은 사회가 혼란하여 임시 정부가 정신이 없는 틈을 이용하여 11월에 병사들과 노동자의 무장봉기를 선동하여, 마침내 11월 7일 단 하루만에 혁명군은 거의 피를 흘리지 않고 수도의 주요 거점을 모조리 점령하고 소비에트 정권의 수립을 선언하였다. 세계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은 아래로부터의 개혁 요구와 위로부터의 개혁 요구가 복합되어 성공을 거둔 혁명이다. 3월 혁명에서 노동자와 농민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이루어졌으나, 자유주의적 사고를 가진 부르조아들이 결실을 맺지 못하자, 레닌이 프롤레타리아들을 선동하여 사회주의 혁명으로 완성을 본 것이다. 그러나 레닌의 1인 독재가 전제군주제에 뒤지지 않는 절대 권력으로 나타나 위로부터의 혁명이 완성되었다고 하겠다.

하지만 하층민을 위한다는 미명아래 레닌에 의해서 일어난 혁명은 여러 가지 모순을 가지고 있다. 빵을 구하기 위한 민중 투쟁이었지만 실제로 혁명이 일어난 소련에서는 70년 후에 붕괴될 때까지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길게 늘어서서 빵을 사기 위해 줄이 계속하여 이어졌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평화를 갈망하던 민중들의 뜻을 외면한 것이다. 동서냉전의 대립 속에서 사회주의 세력의 외연을 확장한다는 미명아래 얼마나 많은 전쟁을 일으켰으며 그 희생은 도 얼마나 많았는가?

그러므로 역사는 모순 속에서 발전하고 변화하는 것이다. 그 본보기가 바로 러시아에서 70년 후에 소련이 붕괴된 것이다. 사회주의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선 아직도 미몽에  빠진 사람들이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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