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선생님/이재운선생님의 칼럼

[스크랩] 안민석이 이순신 사당의 <박정희 현판> 내리고 <숙종 현판>을 달라고 요구했다

윤의사 2017. 10. 17. 20:17

역사는 항상 정치인들이 분탕질을 쳐서 복잡하게 만든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끝난 지 100년이 넘는 1707년까지 별로 유명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를 아는 백성들의 가슴에서 불꽃처럼 타오를 뿐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 정권은 임진왜란 때 목숨 바친 우리 장수들을 대단하게 거론하지 않았다. 오직 명나라가 원군 보내 병란을 물리쳤다며 사대모화하기에만 골몰했다.

숙종 이돈은 서인 중 과격파인 노론의 주장에 따라 먼저 창경궁 안에 명 황제 주익균의 사당인 대보단을 세웠다.



대보단을 크게 지어 사대모화부터 한 2년 뒤, 숙종은 의주에 강감찬 사당을, 아산에 이순신 사당을 지어 백성들의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다. 1706년이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당시 집권당인 노론은 명나라 황제 주익균을 기리라고 했을 뿐이다.


하지만 대원군 이하응은 1868년, 서원을 때려부술 때 사당도 한 사람에 한 곳만 두라 하여 이순신 사당은 통영 충렬사만 남기고 아산 현충사는 없애버렸다. 1905년에는 현충사가 있었다는 유허비를 사당 터에 꽂아 아쉬움을 달랬다.

그러던 중 이순신 종가의 가세가 기울어 이순신 제독 묘소와 제사 마련용 위토까지 저당잡히는 사태가 일어나자 아산 주민들이 성금을 모으기 시작하고, 동아일보가 여기에 가세하여 1931년 현충사를 복원하였다.


 - 1931년에 복원된 현충사


그러다가 박정희 대통령이 1965년에 현충사를 더욱 보완하고 성역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정희가 어떤 의도로 이순신 제독의 가치를 살려냈는지는 모르지만, 이러지 않았으면 우리는 사대모화 사상에 찌든 유림들이 "주익균 황제 덕분에 왜구 몰아냈다"고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있었을 것이다.



숙종 이돈은 자그마한 사당 짓는 데에 국왕으로서 현판을 내려주었다.

때려부순 대원군 이하응은 없앤 사람이니 흔적이 없다 치자.

그뒤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겨우 사당은 복원했다.

그러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 주요 시책으로 현충사를 성역화하여 대대적으로 조성, 오늘에 이르렀다.

이쯤되면 박정희의 공도 있는 것이다. 


숙종 이돈이 현충사를 짓기까지 선조 이균은 통영과 남해에 충렬사를 지어 수군통제사급에서 알아서 제사를 받들게 했다. 격을 낮춘 것이다. 광해군 이혼, 인조 이종, 효종 이호, 현종 이연까지 다섯 명이 있었지만 이들은 아무도 이순신을 국가급 인물로 격상시키지 않았다. 심지어 유성룡의 징비록을 금서로 지정하여 읽지도 못하게 덮어버렸다.

또 대원군 이하응, 고종 이재황, 순종 이척 세 사람 역시 현충사를 때려부순 뒤 방치했다.

이런 역사를 안다면 박정희의 현판을 당장 떼어내라, 이렇게 쉽게 말할 수는 없다. 

이순신을 국가 주요 인물로 끌어올린 숙종 이돈과 박정희의 공은 서로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왜 누가 쓴 현판은 되고 누가 쓴 현판은 안된다고 규정하는가.

한번 더 생각해야 한다. 일개 정치인이 감히 오랜 역사를 쥐락펴락해서는 안된다.




출처 : 알탄하우스
글쓴이 : 알탄하우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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