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제주도

이중섭거리

윤의사 2017. 10. 12. 20:07

고단한 삶을 살았던 화가 이중섭,

제주도로 건너와 이곳 서귀포에서 1.4평의 방에 거주하며

가족의 숨소리까지 느낄 정도로 비좁은 곳에서도

창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화가

일제의 지배, 6.25전쟁, 조국의 분단으로 이어지는 민족의 서글픈 현상을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고통과 희망을 그려 내었다. 그는 향토색 짙은 서양화를 그린 한국 근대 회화의 선구자였으며, 대표작으로는 ’, ‘흰 소’, ‘싸우는 소’, ‘투계’, ‘소와 어린이’, ‘길 떠나는 가족등이 있다. 호는 대향이다.

 

이중섭은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별 어려움없이 자랐고, 여덟 살 무렵에 평양으로 이사 가면서 미술에 눈떴다. 평양 일대에 흩어져 있던 고구려 벽화나 화가 아버지를 둔 친구의 집에서 본 미술책과 미술 도구들이 좋은 길잡이가 되었던 것이다.

그 뒤에 이중섭은 오산 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가 미술 교사 임용련을 만나면서 그림에 대한 재능을 마음껏 키울 수 있었다. 당시 임용련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미술을 배우고 유럽에서도 활동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폭넓은 시각을 지녔고 교육 방식도 남달랐다. 그의 영향으로 이중섭은 서양화를 그대로 본떠 그리지 않고 우리의 정서를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데 힘쓰게 되었다.

 

일본에서 민족 미술 운동을 하다

이중섭은 1935년에 일본에 건너가 도쿄의 분가 학원에 들어가 미술을 공부하였고, 자유미술가협회가 주최하는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당시 일본인 평론가들조차 그의 사뭇 활달하고 민족적인 작품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940년에 미술창작가협회전에서 협회상을 받고난 이듬해, 이중섭은 일본에 유학 중이던 이쾌대, 진환, 최재덕 같은 젊은 화가들과 함께 조선신미술가협회를 꾸렸다. 이 모임은 당시에 하나뿐인 조선인 미술가 단체였고, 일본의 탄압으로 네 번이나 이름을 바꾸면서도 줄기차게 민족 미술 운동을 펴 나갔다.

이중섭은 자기 그림에 반드시 한글로 이름을 적는 등 일제에 저항하는 가운데도, 1943년에 자유미술가협회전에서 다시 망월로 최고상인 태양상을 받았다. 일본의 미술계도 독창적이고 시대에 앞서는 그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향토색 짙은 개성적인 그림을 그리다

이중섭은 귀국한 뒤에 원산사범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유학 시절 만난 일본 여성과 가정도 꾸렸다. 그러다 6.25 전쟁이 일어나 남한으로 내려왔으나, 종이가 없어 담배갑 은박지에 그릴 만큼 가난에 시달렸다.

결국 부인이 견디지 못하고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나자, 홀로 남은 이중섭은 현실의 고통과 싸우며 더욱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의 대표작들의 대부분은 이즈음에 그려졌으며, 결국 마흔 살의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더났다.

이중섭은 민족의 고통과 끝내 버릴 수 없는 희망을 향토색 짙은 개성적인 그림으로 표현하였는데, 소를 통해 조국을 잃은 슬픔을 드러내고, 싸우는 닭이나 까마귀를 통해 민족 분단의 아픔을 나타냈다. 도 어린이의 모습을 통해 순수한 인간성을 보여주려 했다. 특히 그의 은박지 그림이 미국 뉴욕의 모던 아트 박물관에 걸리면서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화가가 되었다.


Tip) 은박지 그림(은지화)

이중섭을 세계적인 화가로 만든 은박지 그림은 도자기의 상감 기법을 발전시킨 것이다. 먼저 담배갑의 은박지를 편 뒤에 송곳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수채나 유채 물감을 화면 전체에 칠한다. 그리고 다 마르기 전에 헝겊이나 손바닥으로 닦아 내면 패인 부분에 물감이 스며들어 선 그림이 나타난다. 이것은 철선처럼 보여 연필이나 붓으로 그린 선과는 다른 독특한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이중섭은 오산 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이 기법을 개발했는데, 뒤에 부지런히 개성 박물관을 드나들며 분청사기를 관찰하여 완성을 기했다. 그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고구려 벽화, 김정희의 추사체 등을 비롯한 전통 문화를 두루 탐구하여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어 내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이중섭 초상화


이중섭이 살던 집, 오른쪽 끝에 1.4평에서 살았다.


이중섭이 살던 집으로 오르는 길



이중섭의 표상과 그가 쓴 시인 소의 말


이중섭이 살던 곳을 안내하는 표지석


이중섭 미술관, 월요일이라 휴관이었다. 그러나 연휴 기간에 다른 박물관처럼 개관했으면 한다.


은지화가 이중섭 거리의 보도에 새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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