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우리나라의 볼거리

홍난파가옥

윤의사 2012. 5. 1. 20:43

서울시 종로구 홍파동에 가면 홍난파가옥이 있다.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구에서 800m정도 올라가면 홍난파 가옥이 보인다.

빨간 외관에 담쟁이 덩굴이 감산 모습이 참 예쁜 집이라 생각된다.

독일식으로 만들어진 가옥은 홍난파가 세상을 떠난 후

이 가옥의 주인이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였다고 한다.

가옥의 형태가 너무 좋아서 말이다.

그러나 냉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요즈음에는 관람하기에 좋지만

한여름이나 겨울에는 춥거나 더위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홍난파 가옥은 2층으로 되어 있다.

현관문은 바로 2층으로 연결된 특이한 구조이고,

1층은 지하 형태로 되어 있다.

지붕은 붉은 기와로 만들어진 경사가 가파른 삼각형 모양이다.

창문은 화분을 놀 수 있는 받침대가 설치되어 있다.

미닫이가 아닌 여닫이 형태로 되어 있었다.

 

홍난파 가옥의 내부구조는 1층은 거실과 침실로,

지하 1층은 지하실로 두어 공간을 알뜰하게 사용했다.

지하 1층은 화강석 석재를 이용하여 거칠게 마감한 벽면은

재질감을 강조하는 러스티게이션 수법을 이용하였다.

 

홍난파는 일제 강점기의 음악가이다.

홍난파의 본래 이름은 영후이다.

일본 도쿄 우에노 음악학교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연악회라는 음악 단체를 만들어 음악 교육과 보급에 힘썼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 잡지인 <음악계>를 만들었다.

삼일운동 때는 도쿄에 있는 조선 YMCA에서 독립 선언서를 인쇄하여 유학생들에게 뿌렸고,

미국 유학 시절에는 홍사단 단가를 작곡한 일이 빌미가 되어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그러나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72일동안 고문을 당한 후

홍난파는 조선 총독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조선 문예회에 가입하여 일본에 협조하였다.

이 일로 홍난파는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되었다.

윤석중의 노랫말에 곡을 붙인 ‘고향의 봄’, ‘퐁당퐁당’, ‘오빠 생각’ 같은 동요를 작곡하고,

‘봉선화’, ‘성불사의 밤’ 같은 민족의 정서와 애수가 담긴 작품을 남겼다.

 

그림같은 홍난파 가옥 전경

 

담쟁이덩굴로 감싸인 모습

 

홍난파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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