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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을 구한 김영환대령

윤의사 2011. 6. 19. 08:55

요즈음 서울에 있는 호림박물관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랑할

대장경 인쇄본을 전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장경 경판은 몽골과의 전쟁에서 불타

남아있는 것이 없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그래서 몽골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에 의지해 막고자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도 6.25전쟁에서 없어질 뻔했다.

이를 구한 것이 김영환공군대령이었다.

해인사가 인근 빨치산과 북한군 패잔병에게 점령된 상태이던

1951년 8월 현지에서 전투를 치르던 경찰부대의 긴급 지원 요청을 받은

미 제5공군이 해인사 타격을 지시하자 김영환은 편대장으로 출격했다.

타격 지점인 해인사 상공에 이르자 김 장군(당시 계급은 대령)은

순간 적으로 해인사에 보관된 팔만대장경이 떠올리고 공격을 멈추고

기지로 귀환했다.

그는 명령 거부의 질책에 당당히 대답했다.

“영국 사람들은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팔만대장경은 한국 사람들에게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보물 중의 보물이 아닌가? 수백 명의 적들 때문에 한국만 아닌 인류의 유산을 파괴할 수는 없었다”

김 대령은 다시 무전기를 잡았다.

“전대, 해인사 뒤의 적 보급기지만 공격하고 기지로 돌아간다.”

갑작스런 귀환 지시를 모니터링 하던 비행단에서 추궁이 날아왔다.

“왜 해인사를 타격하지 않는가?”

“빨치산 몇 명 죽이기 위해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불태울 수는 없습니다. 돌아가겠습니다.”

“귀관의 지금 행동은 항명이다.”

“제가 전적으로 책임지겠습니다.”

그는 공군 조종사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를 보급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1951년 어느 날 그가 친형 김정렬 장군 집에 들렀을 때

형수가 만들어준 머플러를 받아 맨 것이 공군 ‘빨간 마후라’의 시작이다.

휴전 이후에도 전투조종사 양성 등 공군 전력 향상을 위해 헌신했던 김 장군은 1954년 3월 5일 F-51 전투기를 조종해 사천에서 강릉기지를 향하던 중 악천후로 추락해 34세로 순직했다.

 

 

법보전 전경

 

법보전 입구의 연꽃무늬 그림자, 오후 3시에 가장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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