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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기다릴 줄도 알아야

윤의사 2023. 8. 23. 20:00

월북 시인 박세영의 시에 곡을 붙여 조선인민군행진곡을 작곡했다.

 

우리는 강철같은 조선의 인민군

정의와 평화위해 싸우는 전사

불의의 원쑤들을 다 물리치고

조국의 완전독립 쟁취하리라

 

인민의 자유 행복 생명을 삼고

규율과 훈련으로 다진 몸이니

온 세계 앞서 나갈 조선의 인민군

나가자 용감하게 싸워 이기자

 

한때 북한군들이 부른 대표적인 군가이다.

그리고 정율성은 195012월에 중공인민창작조와 함께 4개월 동안 참전했다. 이때 그가 작곡한 중국 인민 해방군 군가를 부르며 6.25 전쟁에 참여해 통일의 꿈이 사라졌다. 지금도 중국의 모든 군대 행사에서 부르는 군가이다.

 

전진, 전진, 전진! 우리의 대오는 태양을 향하고

조국의 토지를 밟으며 민족의 희망을 짊어지고 있는, 우리는 하나의 무적의 역량

우리는 농민과 노동자의 자제, 우리는 인민의 무장, 두려움 없이, 굴복은 없다

영특하고 용맹하게 전투해서 반동파를 깨끗하게 소멸할 때까지

마오쩌둥의 기치는 높이높이 휘날린다.

 

들어라! 바람이 외치고 신호나팔 소리가 울려온다

들어라! 혁명의 노랫소리 얼마나 우렁찬가?

동지들 발맞춰 해방의 전쟁터로 달려가자.동지들 발맞춰 조국의 변강으로 달려가자!

전진, 전진! 우리의 대오는 태양을 향하고

마지막 승리를 향하고, 전국의 해방을 향한다.

 

정율성은 근대 중국 3대 음악가요 신중국 창건 100명 영웅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난 정율성의 본명은 정부은(鄭富恩)이다. 큰 외삼촌 최흥종의 집에 있는 축음기를 통해 음악을 듣고 피아노를 연주하며 재능을 익혔다. 1933년 형 정의은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서 2기 학생을 모집하러 광주와 왔을 때 함께 상하이로 가 조선혁명간부학교에 입학했다가 의열단에 가입했다. 의열단에서 일본군 정보수집을 하면서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소련 레닌그라드음악원 출신 여교수 크리노와(Krenowa)에게 음악을 정식으로 배우면서, 이름을 '선율(旋律)'로써 '성공(成功)'하겠다는 의미에서 '율성(律成)'으로 개명했다.

19391월 중국 공산당 당원이 되면서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했는데, 이 노래가 훗날 중국인민해방군 군가가 되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북한으로 가서 북조선 노동당원으로 입당하고 인민군과 관련된 조선인민군행진곡와 같은 노래를 작곡했다.

1956년 연안파가 숙청되자 중국 국적으로 바꿔 마오쩌둥의 공산주의 음악활동을 하다가 1976127일 고혈압으로 죽어 바바오산의 혁명투사공동묘지에 묻혔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통일은 물 건너 갔으며, 국군과 유엔군만 178569명이 전사했다. 전사자의 대부분은 중공군의 개입 때문이다.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부른 노래가 정율성의  ‘중국 인민 해방군 군가’이다.

남북이 통일된 뒤 역사의 평가에 따라 얼마든지 기념관을 지을 수도 있다. 

광주시장은 뭐가 그렇게 급한 것일까?

독립유공자들의 등급을 정한다는 것이 무의미하지만, 정율성보다 더 훌륭하게 항일운동을 펼치신 분들의 기념관도 없는 실정에 48억의 예산을 들인다는 것은 ...

더구나 그가 한 항일운동만 기록한다고 하는 것은 평가에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김일성의 표창장(박민식 보훈부 장관 페이스북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