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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해왕은 대장장이의 아들

윤의사 2023. 3. 23. 19:35

신라의 탈해왕은 제 4대왕으로 다파나국(탐라국:오늘날의 제주도)의 왕과 여인국(女人國)의 왕녀 사이에서 태어나 궤짝에 넣어져 표류하던 중 아진의선이라는 할머니가 까치소리를 듣고 나아가 궤짝을 열어 보니 아이가 있어 할머니는 까치 때문에 얻은 아이라 하여 까치작()자의 한 쪽을 떼어서 성을 석()이라 하고, 알을 깨뜨리고 나왔다 하여 이름을 탈해(脫解)하고 하였다.

탈해가 성인이 되어 자기가 살 집터를 찾고 있었는데 멀리 경주 별판에 반달처럼 생긴 언덕이 보여 가서 보니 이미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에 탈해는 그날 밤 호공의 집 둘레에 쇠와 숯부스러기를 묻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뒤에 호공을 찾아가

 

이 집터는 우리 조상들이 살던 곳인데 어찌 어르신네가 살고 계십니까? 이제 주인이 왔으니 돌려주십시요.”

 

호공은 깜짝 놀라 그렇지않다 하고 서로 다투다가 관가에 고발하니 재판이 열렸지 관가에서 탈해에게 물었다.

 

무엇으로써 이곳이 너의 집터임을 증명하겠느냐?”

 

이에 탈해가 답하기를

 

우리 조상은 본래 대장장이 였는데 잠시 이웃 고을에 나간 동안 다른 사람이 빼앗아 살고 있으니 땅을 파서 조사해 주시지요?”

 

탈해의 말대로 땅을 파보니, 과연 숫돌과 숯이 나왔으므로 이에 그 집을 빼앗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 남해왕은 탈해가 지혜 있는 사람임을 알고 맏공주로서 아내를 삼게 하니 이여인이 아니 부인(阿尼夫人)이다.

 

이 신화는 삼국유사에도 삼국사기에도 나오는데 다른 신화가 선민사상(자신의 후손이라는 사상)을 주장하는데 비하여 탈해는 굉장히 사소한 신분이다. 여기에 대장장이 아들이 어찌 왕이 될 수 있을까?

고대 국가의 성립 요소 가운데 정복국가가 있다.

정복국가의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발달된 무기를 지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철기문화였으며, 탈해는 자신이 철기사용에 따른 군사력과 정치적 힘을 과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남해왕은 탈해의 세력에 대한 두려움에 사위로 삼았으며, 석씨가 신라의 성골 귀족 중 3대 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이고, 유리왕의 뒤를 이어 4대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로 전해오는 신화나 설화에는 조상들의 숨결과 역사적 사실이 살아 있는 것이다.

탈해왕릉(사진:경주시관광자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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