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1월 31일 오늘의 역사, 일제의 통감정치가 시작

윤의사 2022. 1. 31. 10:34

1906131일자로 우리나라의 일본 공사관이 문을 닫고 통감부가 업무를 시작하면서

한반도에서 일본에 의한 통감 정치가 시작됐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을사늑약(제2차 한일협약)을 11월에 강제로 맺으면서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통감정치를 하면서 내정간섭이 시작되었다.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가 외교고문으로 있으면서 우리나라는 국호만 존재할 뿐 실권은 일본이 행사한 것이다.

일본에 의한 식민지가 1910년 8월 29일의 한일합방으로 공식화되었지만,

이미 통감정치의 실시로 한반도는 일제에 의한 지배를 받게된 것이다.

2월에는 임시통감으로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가,

3월에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정식으로 부임하여 통감정치가 본격화되었다.

이제는 임시통감인 하세가와 때 전국 10개 지역에 우리나라의 지방 관청을 감독하기 위한 통감부 지방기관인

이사청(理事廳)이 설치하고, 전국 각지에 일본 경찰을 파견하였다.

같은 해 11월에는 또 다른 8개 지역에 이사지청이 들어섰다.

초대 통감 이토는 1907년 고종이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기 위해 파견한 헤이그 밀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킨 뒤, 이완용(李完用) 친일내각과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했다.

한일신협약으로 우리나라 정부의 각 부처에는 일본인 차관이 실권을 행사하면서

외교와 내정을 통감의 지휘 아래 한반도를 지배하는 '차관 정치'가 이루어졌다.

이토는 또 한일신협약에 '군대를 해산한다'는 부속밀약을 넣어 군대를 해산함으로써

일본의 침략을 방어할 군사력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이토는 1909년 통감직을 그만두고 추밀원 의장이 되면서

소네 아라스케(曾荒助),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이토의 뒤를 이어 통감이 되어 한반도의 식민지를 위한 토대를 구축했다. 그리고 3대 통감을 지낸 육군대장 데라우치는 합방 뒤 초대 조선 총독이 되었다.

이토 히로부미,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의사에게 사살되었다.(출처:힐링)

현대 국가의 중요한 요소는 경제력, 군사력, 그리고 통합된 국민이다.

이를 바탕으로 다시는 굴욕의 역사를 반볻해서는 안되겠다.

 

내일은 설날입니다. 

블방을 찾는 모든 분들께서는 호랑이의 기운을 받으셔서 소원성취하는 한해가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