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오늘은 저항 시인 이육사 옥사

윤의사 2022. 1. 16. 13:14

1944116일 시인 이육사가 중국 베이징(北京)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40세의 아까운 나이에,

육사의 본명는 원록(源祿) 또는 활()이다.

경북 안동에서 퇴계 이황의 14대 손이니 대단한 명문가 출신이라 하겠.

이육사는 짦은 생이었지만 명문가 출신답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였다.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지만, 그의 독립 운동 또한 길이 남을 것이다.

이육사는 21세 때인 1925년 의열단에 가입한 이후 죽을 때까지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저항하였고,

23세에 감옥에 들어가고나서 우리나라와 중국의 감옥을 끊임없이 드나들 정도로 독립운동에 열중이었다.

호인 '육사'1927년 장진홍 의사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돼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감옥에 있으면서 수인번호 64를 딴 것이라 전한다.

일찍이 한학을 배우고 청년기에는 군사학교에서 육체와 정신을 함께 수련한 육사이기에

오늘날의 남성다움의 상징과도 같다고 하겠다.

'광야'에서 개벽에서 미래까지를 다섯 행의 내용에서 남성다움의 이미지가 나타나고 있다.

광야와 같은 시와 달리 '청포도'는 다정한 마음을 가진 육사의 서정시를 보여주고 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안동 이육사 기념관의 흉상
이육사 기념관
물안개 낀 낙동강이 이육사의 서정성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