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근,현대사 영웅만들기

민족 시인 정지용

윤의사 2021. 9. 27. 11:08

정지용 시인은 1902년 6월 20일 충북 옥천에서 아버지 정태국과 어머니 정미하의 4대 독자로 태어났다.

부친은 중국 등지에서 한의학을 배워 한때는 부유했으나,

홍수의 피해로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 처가 친척의 집에서 머슴으로 일했다.

지용은 아버지의 방랑과 실패, 가난으로 인한 불행, 그리고 4대 독자로서 느꼈을 고독으로

“나는 소년적 고독하고 슬프고 원통한 기억이 진저리가 나도록 싫어진다”

고 회고한 바 있다.

고독과 가난은 정지용을 문학적 상상력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4대 독자인 정지용에 대한 가족들의 기대감은 불행한 환경의 정지용에게

꿈과 문학적 상상의 나래를 키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정지용은 17세에 휘문고보에 입학하여 동인지 『요람(搖籃)』을 만들어 습작을 시작하였다.

성적이 우수했던 정지용은 장학금으로 공부했으며, 2학년이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많은 학생들이 검거되면서 이를 막고자 동맹휴학을 주도하여 무기정학을 받기도 했다.

휘문고보의 유학비용 지원으로 일본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학 예과에, 6년 후에는 같은 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정지용은 학교에 재학 중일 때인 1926년 6월 『학조(學潮)』창간호에

'카페 프란스' 등의 시와 시조 및 동요를 포함한 9편의 작품을 발표했고,

『조선지광(朝鮮之光)』, 『신민(新民)』 등에 작품을 계속 발표하여 시인으로 입지를 굳혔다.

일본에서는  『근대풍경(近代風景)』에 3년간(1926. 12~1928. 2) '카페 프린스', '바다', '갑판위' 등

시13편과 수필 3편을 발표했다.

유학에서 돌아와 휘문고보 교사로 재직하면서 1930년 김영랑, 박용철과 함께  『시문학』을 창간하였다. 

정지용의 추천으로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의 청록파 시인을 비롯해

이한직, 김종한, 김수돈, 황민, 박남수 등의 시인이 나왔다.

정지용의 문학적 상상력은 어린 시절의 가난과 고독이 바탕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 현실과 다른 아름다운 꿈을 그리려고 하였다.

해방 후 이화여대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백범노선을 따르며 신탁통치 반대, 미군과 소련군의 철수, 민족 통일을 주장하였다.

납북되었다거나 6.25전쟁 중 폭사당했다는 여러 설이 전한다.

박두진 시인의 회고에 의하면

“지용은 작은 체구로 얼굴에 예지의 기상이 번득였으며, 비범한 눈빛이 영롱한 광채를 내뿜고 있다.

그리고 그의 천재적인 기질은 오만에 가까운 당돌성과 패기를 느끼게도 하나 그러한 엄숙한 풍모 속에는

소탈함과 자상함을 숨기고 있다.”

고 전하고 있다. 

정지용 생가

 

정지용 시비

정지용 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