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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의 원래 시호는 열조

윤의사 2020. 8. 20. 18:47

조선 16대 임금
인조의 원래 시호는 '열조(烈祖)'였습니다.
왜 열조가 되었을까요?
그는 청나라로부터 정묘, 병자호란의 두 번의 침략을 받았으며,
국내에서는 이괄의 난을 겪으며 백성들의 생활을 어렵게 하였지요.
또한 소현세자와 며느리인 민회빈 강씨, 그리고 석철 등 손자까지 죽였습니다.
문제는 소현세자와 민회빈 강씨의 백성에 대한 마음이 지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청나라 조정에서도 소현세자에 대해 굉장히 우호적이었습니다.
민회빈 강씨는 자기가 볼모로 잡혀갈 때 함께 갔던 식솔 500여명의 숙식을 책임졌습니다.

그녀는 아버지 강석기를 통해 조선의 물자를 청국에 팔아 많은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 이윤으로 심양에 농토를 구입하고, 농토를 경작할 사람으로 심양이나 청나라로 잡혀온

조선인 포로들을 돈을 주고 속환하게 하여 일자리를 주었습니다.
소현세자와 민회빈 강씨가 머물던 '심양관'은 항상 중국 상인과 조선 상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대단한 부를 축적하고 9년 만에 돌아온 소현세자와 민회빈 강씨에 대한 주전파의 시각은 당연히 좋지 않았지요.

인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소현세자부부와 손자까지 죽이게 되었던 것이지요.

지금이야 인터넷을 통해 소문이 나지만 조선시대에는 보부상을 통해 입소문이 퍼지지요.

백성들이나 사관들이 볼 때 인조는 백성들을 '열받게 한 사람'이라 '열조'라고 지었지요.

그랬더니 봉림대군이 노발대발하였습니다. '부왕이 얼마나 인자한 분인데...'라는 한 마디에 '인조(仁祖)'가 되었고,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하다'하여 봉림대군은 '효도 孝'를 써서 '孝宗'으로 시호를 올렸다는 후문입니다.

인조와 인열왕후 한씨의 릉,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인열왕후가 살았다면, 

소현세자가 왕위를 계승했다면 오늘날 한반도의 정세가 많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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