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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해군 제독 시득

윤의사 2020. 7. 5. 15:56

 

 

20103, 대양 해군을 꿈꾸며 14천톤급의 독도함까지 거느린 대한민국 해군이 어뢰로 추정되는 물체에 의해 공격을 받아 배가 두동강이 나고 46명의 숭고한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 그들의 극락왕생을 빌면서 역사 속의 해군 명장을 만나보자.

백제와 고구려를 당나라와 연합하여 물리친 신라였지만 불완전한 통일이었다. 옛 고구려 영토인 만주 일대와 한반도 북부, 즉 대동강에서 원산만 이남 지역만을 차지한 통일이었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나서 국내 문제에 신경을 써야 했다. 바로 토번과의 문제였다. 633년에 티벳지방을 통일한 토번은 기세를 당나라로 돌렸다. 여당전쟁과 백제와 고구려와 싸우느라 지친 당나라는 싸울 여력이 없엇다. 675년 당나라는 공주를 토번 왕과 혼인하기로 하고 강화를 맺었다.

토번 문제가 해결되자 당나라는 한반도로 손을 뻗쳤다. 그리하여 대동강에서 원산만 이남 지역의 신라를 정복하기 위해 나섰다. 설인귀를 수군총대장으로 10만명의 해군과 20만명의 육군으로 신라를 바다와 육지에서 양공작전을 폈다. 신라에서도 백제부흥군과 고구려부흥군을 흡수하여 당나라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당나라의 길 안내 역할은 신라 사람 김풍훈이었다. 김풍훈은 뇌물을 받고, 당나라와 밀거래를 했다는 이유로 사형당한 김진주의 아들로 당나라로 도망가 있었다. 설인귀는 김풍훈이 이끄는 대로 강화도를 거쳐 한강으로 들어왔다. 이대 이곳을 지키던 문훈장군은 설인귀가 이끄는 부대가 이곳으로 올 것을 알고 일부러 패하는 척 하면서 육지 내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꼬리를 잘라 물자 보급을 막는 한편 매소성에서 당나라 군사를 물리쳤다. 설인귀는 큰 패배를 하면서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이대 활약한 장수 중에는 김유신의 아들인 원술랑도 큰 공을 세웠다. 그는 김유신의 아들로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부하들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와서 김유신으로부터 쫓겨났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촌인 문무왕의 명령으로 매소성 전투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우면서 떨어졌던 자신의 명예를 되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원술랑은 집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집에 돌아가니 아버지 김유신은 이미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지가 인정하지 않은 자식을 나도 인정할 수 없다는 어머니의 싸늘한 외침에 원술랑은 태백산으로 들어가 스님이 되었다는 이야기만 전하고 있다.

설인귀는 후퇴하였다가 금강 입구 기벌포로 군사들을 집결시켰다. 이곳은 시득장군이 머물고 있었다. 우리가 해군 명장 하면 신라 말기의 장보고나 임진왜란 중의 이순신장군을 떠올린다.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장수가 신라통일기의 시득이다.

시득은 당나라가 한반도를 지배하기 위한 최후의 전투를 벌인 금강 입구의 기벌포에서 설인귀를 만나 싸운 명장이었다. 설인귀는 경주로 향하기 위해 금강 입구의 기벌포로 2만의 해군을 이끌고 진군하였다. 이때 설인귀를 막기 위한 신라군은 고작 병선 100척의 시득이었다. 설인귀를 맞은 시득은 첫 싸움에서 패배하였다. 이 패배를 교훈삼아 시득은 전술을 바꾸었다. 바로 지형지물을 이용한 게릴라전이었다. 기습과 매복, 유인전 등 게릴라전을 통해 설인귀가 이끈 당나라군과 22번을 싸워 모두 승리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이때 전사한 당나라 군사는 4000명이었다. 해전이었으므로 4000명이라는 것은 바닷속에 수장된 당나라군을 합친다면 그 이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17등급의 신라 벼슬 중 8등급의 사찬에 지나지 않던 시득은 이름을 올릴 수가 없었다. 설인귀는 이 전쟁의 패배에 대한 책임을 물어 유배를 가야만 했으니, 당나라에서는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나아가 중국의 학자들은 시득에 의해 패배한 기벌포전투와 문훈과 원술랑에 의해 패배한 천성전투가 <삼국사기>에 분명 기록되어 있지만 인정하지 않고, 설인귀의 유배와 당나라가 신라애ㅔ서 물러난 것은 오직 토번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할 정도이다. 그만큼 중국 사람들에게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역사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신라 통일에 대한 모든 공은 김유신과 김춘추, 문무왕과 김인문에게 돌아갔다. 이제 시득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그리하여 해군 용사들에게 사기를 북돋아주어야만 하겠다.

 

<한국영웅전>에 시득장군을 칭송하는 시가 있다.

 

<시득장군(施得將軍) >

여제조종라전당(麗濟朝終羅戰唐)

우세대적근침장(優勢對敵僅侵障)

장기해전침선승(長期海戰沈船勝)

단급정군구축양(斷給征軍驅逐攘)

(七絶戊戌十一月 桑谷)

 

고구려와 백제의 왕조가 끝난 후에 신라는 당과 전쟁을 했네.

우세한 적을 맞아 간신히 침입을 막고 있었는데,

오랜 해전에서 배를 격침하고 이겼으니

보급이 끊긴 원정군을 구축하고 물리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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