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명동성당을 즐겨 찾는다.
또한 명동은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그런데 명동성당 입구에 있는
‘이재명의사 의거터’는 그냥 지나친다.
먼지가 쌓인 ‘이재명의사 의거터’의 자취를 보면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안타까움이 커졌다.
이재명의사는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나 평양으로 이사하여
일신학교를 다니면서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
1904년 하와이로 노동 이민을 떠났다가
일본에 의해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조약과
차관 정치와 군사권을 빼앗은 한일신협약의 체결 소식을 듣고
1907년 일본을 거쳐 귀국하여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1909년 12월 22일 서울 명동성당(당시 지명 : 종현천주교교회당)에서
12월 17일에 세상을 떠난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 2세 추도식이 열렸다.
이재명은 교회당 앞길에 변장을 하여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인력거를 타고 내려오는 이완용을 칼로 찔렀으나
아쉽게 중상을 입히는데 그쳤다.
인력거꾼 박인문이 이재명을 가로막은 것이
이완용이 살아남게 되었다.
이재명은 1910년 사형 선고를 받고
서대문 형무소의 전신인 경성감옥에서 20세의 젊은 나이에 처형을 당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며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이재명의사,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먼지에 쌓인
‘이재명의사 의거터’에 관심 없이 지나치고 있으니,
그 분의 희생을 국민들이 되새기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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